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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K팝으로 한국 사회의 초상을 유쾌하게 풀어내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6-18 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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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연극제 희곡 부문을 수상한 한국계 독일 작.연출가 박본의 신작 '사랑Ⅱ LIEBEⅡ'


[이승준 기자]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독일인 작가 겸 연출가 박본의 신작 '사랑Ⅱ LIEBEⅡ'를 오는 23일부터 7월 18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다.


옛 서독의 수도 기능을 한 ‘본’에서 이름을 따온 한국계 독일 예술가 박본은 어두운 소재를 그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2017년 만 30세의 나이에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연극제 희곡상을 거머쥐어 화제가 되었다. <사랑Ⅱ LIEBEⅡ>는 독일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박본과 국립극단의 첫 작업이다. ‘한국에 뿌리를 둔 젊은 독일 예술가’ 박본의 시선을 통해 내부자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해석하는 장을 마련한다.


K팝, K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사랑’에서 출발한 이번 작품은, 사랑의 후속편이라는 의미로 '사랑Ⅱ LIEBEⅡ'가 됐다. 박본이 나고 자란 독일에 대해 작업한 '도이칠란트',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르비아에 대해 작업한 '유고유고슬라비아'에 이은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부모님의 나라’ 한국의 대중 문화에 대해 박본은 완벽하고 화려한 외연을 먼저 떠올렸다. 인간의 가장 보편적 감정인 ‘사랑’을 완벽하게 구현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산업, 그 이면에 사적인 삶까지 희생해가면서 이루고자 하는 산업 종사자들의 ‘완벽’에 대한 열망을 그린다.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로 보이기도 하는 K열풍의 이면을 박본은 자신만의 깊고도 날카로운 통찰력과 재기발랄한 연극 언어로 풀어낸다. 


K팝 아이돌을 소재로 K드라마처럼 변화무쌍한 전개를 보여주는 이번 작품은,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해서 자살한 3명의 인물로부터 시작한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지만, ‘지구의 핵’에서 삶이 연장되고 있다. 


청룡, 주작, 현무 3명은 이곳에서도 아이돌에 도전하고 있다. 완벽한 한 명의 멤버를 위해 9999년 동안 밭에서 4번째 멤버 ‘이무기’를 키웠다. 1년만 더 키워 1만 년을 채우면, 이무기는 완벽한 아이돌이 된다. 아이돌그룹 ‘슈퍼 한(恨)’은 자신들이 자살한 이야기를 '배터리 1%’라는 노래에 담아 무대를 선보인다. "기대에 부응치 못했고, 물러터지고 열심히 하지 못했다"면서 자책하는 이들은 결점 없는 완벽한 사랑의 감정, ‘사랑 Ⅱ’를 추구한다.



강현우, 김예림, 박소연, 이유진 등 4명의 국립극단 시즌단원이 혼성 아이돌 그룹으로 변신한다. 올초 코로나19로 국가 간 왕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독일에 거주하는 박본 작·연출가와 화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한 결과다. 


실제 K팝 무대를 보는 듯 안무와 노래가 등장하는 공연을 즐기는 사이, 잊고 있던 한국 사회의 이면이 어느새 관객 곁에 다가와 자리 잡는다. 치열한 경쟁, 완벽에 대한 강박 등 한국사회의 그늘이다. 배우들은 실제 아이돌처럼 핀마이크를 착용한 채 공연한다.


작품을 위해 스위스의 무대미술가 율리아 누스바우머(Julia Nussbaumer)가 ‘지구의 핵’이라는 극중 배경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구현해 냈다. 세트에는 지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와 식물을 재배하는 공간이 존재한다. 작곡가 벤 뢰슬러(Ben Roessler)는 K팝을 탐구해 극에 사용되는 모든 노래를 새로이 만들고, 현대무용가 이경진이 안무를 맡았다. 판소리의 창법, 한복 콘셉트의 의상 등 K팝 뿐 아니라 한국 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차용한다. 


박본은 “부모님의 나라에서 작업할 수 있어 영광이다. 친지를 만나러 1년에 한두 차례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왔지만, 국적이 독일이고 한국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항상 있었다"면서, "완전한 이방인도, 완전한 내부인도 아닌 나의 시선을 장점으로 활용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작품에 착안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한편 국립극단은 'SWEAT 스웨트'부터 전격 도입한 ‘동반자 외 좌석 한 칸 띄어 앉기’ 예매 시스템을 이번 공연에도 적용한다. 일행끼리는 최대 4매까지 연속된 좌석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된 좌석 좌우로 한 칸 거리두기가 자동으로 지정되는 방식이다. 입장권 판매는 17일 2시부터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서 시작하고, 예매자 전원에게 극중 인물의 포토카드를 랜덤으로 증정한다. 오는 27일 공연 종료 후에는 강현우, 김예림, 박소연, 이유진 등 출연 배우 4인이 참여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K팝, K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랑’. 깎아놓은 듯 완벽한 외연을 자랑하는 K팝, K드라마는 늘 사랑을 외친다. 그 이면을 통해 한국 사회 본질을 보고 싶었던 작.연출가 박본은 사랑의 후속편이라는 의미로 작품 제목을 '사랑Ⅱ LIEBEⅡ'라 붙였다.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박본의 작업은 긴 리서치 기간이 특징이다. 본질 찾기는 곧 작품의 핵심과 연결되면서 그가 공연을 풀어갈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완성된 대본으로 연습을 시작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연습을 진행하면서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대본을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개막 직전까지 끊임없이 리서치를 하고 대본을 보완하는 그의 공연은 그야말로 ‘살아 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작·연출가의 머릿속이 아닌 연습실에서 매일 마주치는 배우들을 알아가면서 만들어졌다. 연습 시작부터 개막까지의 모든 과정에 걸쳐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함께 보고 싶은 내용을 모두가 가져와서 공유하고 활발히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본뿐만이 아닌 무대, 음악, 안무 모두 이러한 리서치 과정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섬세하고 촘촘하게 하나의 방향성을 이룬다. 이방인과 내부인, 그 중간 어디쯤에 걸친 작·연출가의 시선으로 펼쳐내는 한국의 모습은 신선하기도, 익숙하기도 하다.


박본은 “완벽하고 아름다운 K팝과 K드라마의 미학이 나는 즐겁다. 특히 K팝의 강점은 ‘감정’이다. 내가 모르는 감정이라도, K팝은 직관적으로 그 감정을 구현하여 전달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장치들을 극에 이용해서 한국 사회의 완벽해지고 싶은 갈망에 접근해보고자 했다.”면서, “K팝은 여러 음악 장르의 정체성을 끌어 모아서 연습을 거듭해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장르라서 특별하게 느껴진다. K드라마도 여기저기 있던 소재들을 다듬어 공장에서 더 좋은 상품을 가공하듯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K팝이 다른 예술 장르들과 달리 철저하게 검증되고 선택받은 ‘자격’으로부터 시작하는 독특한 창작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지점과도 연결된다. 이 지점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작.연출 의도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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