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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58] 제42회 서울연극제 극단 배다, 이준우 연출 '붉은 낙엽 Red Leaves'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5-31 22:08:09
  • 수정 2023-02-15 07: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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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씨어터 3관에서 제42회 서울연극제 극단 배다의 Thomas H Cook 작, 김도영 각색, 이준우 연출의 <붉은 낙엽(Red Leaves)>을 관람했다.

토머스 H.쿡(Thomas H. Cook)은 미국 추리 문학의 저력을 대변하는 작가다. 1947년 알라바마 주의 포트 패인에서 태어났다.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 뉴욕시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1980년 첫 장편 『무죄의 피(Blood Innocents)』를 내기까지, 대학 강사, 광고업자, 잡지 편집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1980년대 발표한 작가 초기의 작품들은, 프랭크 클레몬스 3부작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사립 탐정 소설, 경찰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1991년 작『피의 증거(Evidence of Blood)』이후부터 쿡은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탈피한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닌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현실과 과거의 병치”,“기존의 추리소설 요소들의 파괴(예를 들어 몇몇 작품에는 범죄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내면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집요한 탐구”등을 특징으로 삼는다. 

그러나 초기작이든 후기작이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그 유려하고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이다. 그의 작품은 데뷔작을 포함하여 총 5편의 소설이 에드거상 후보에 올랐고, 이 중 『주홍색 기억』이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상을 탔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본서 역시 2006년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부문 후보에 올랐다. 또한 그는 두 편의 논픽션을 썼는데, 『피의 메아리(Blood Echoes)』는 에드거상 최우수 논픽션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외 쿡의 대표작으로는 『낙엽(Red Leaves)』 『비탄의 언덕(Breakheart Hill)』, 『불길의 거리(Street of Fire)』,『도시에 비가 내리면(City When It Rains)』등이 있다.

각색을 한 김도영은 <왕서개 이야기> <수정의 밤>, <무순 6년>,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등 역사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연출을 한 이준우(1885~)는 <내 아내의 모는 것>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씨전> <무순 6년> <못> <포트폴리오> <아록과 루시> <수정의 밤> <왕서개 이야기>를 연출한 발전적 장래가 기대되는 연출가다.

붉은 낙엽(Red Leaves)의 ”붉은(Red)"이라는 단어는 무엇보다 “피”의 붉은 색이고, 그 “피“가 암시하는 것은 ”가족“이다. ”잎들(Leaves)“이라는 두 번째 글자에서, 우리는 이 나뭇잎들 뒤에 커다란 나무가 있을 것을 예상한다. ”나무“는 가족일 것이고, 그 ”잎들“은 그 가족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원을 말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그”나뭇잎이 붉다“는 것은 그 계절이 가을임을 알 수 있고, 그리고 그 ”붉은 잎들“은 이제 사명을 다해 곧 떨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여름날의 초록 잎들은 사람이 해코지하지 않고서야 떨어지지 않겠지만, 가을날 떨어지는 붉은 낙엽의 아스라한 하강은 막을 수가 없다. 결국 『낙엽(Red Leaves)』은 ”운명의 시간을 다해 추락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에릭 무어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이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조용한 마을의 저택 주인으로 마을에서 사진 가게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능한 아내 메레디스와 사춘기에 접어든 내성적인 아들 키스를 가족으로 둔 가장이다. 하지만 어느 날 키스가 돌봐주었던 8살 소녀 에이미 지오다노가 다음날 실종되고, 키스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자, 에릭 무어의 가족은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한다. 

무어는 키스를 위해 변호사를 부르고, 열심히 키스를 변호하지만 그의 내면 안에 싹튼 불신의 싹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건이 조금씩 커져 가면서 그는 그 자신의 옛날 가족,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과 누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의 비밀도 마주해야 한다.

파국은 에릭의 아들 키스가 혐의를 받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쿡의 “낙엽”이 상당히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이 “피해자, 여기서 간단히 말하면 에이미 지오다노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이끈 것에 반해, 이 작품은 “혐의자 또는 가해자” 쪽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가족 간의 불신이라는 주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작 『누명』에서도 다루어졌었다. 그 때 사람들은 자기 가족만 의심하고 걱정하면 되었다. 

하지만 『붉은 낙엽』에서는 자기 가족을 의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에 가서 파국은 양쪽에 다 찾아온다. 이것은 지금까지 보여준 토머스 H. 쿡의 넓은 시계(視界)를 보여준다. 쿡은 단순히 우리가 우리이고, 한 가족이 한 가족이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가족이 또 다른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연극의 대미에서의 반전과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은 관객의 가슴을 때리는 귀결이다.

무대 앞에는 흰색으로 막을 쳐놓고 주인공이 개막을 한다. 상하수 쪽의 흰색 막도 출연진이 열어놓는다. 전원의 한 저택의 거실이고, 장식장과 그 앞에 주점 카운터 같은 조형물이 놓이고 그 앞으로 긴 식탁과 의자가 여러 개 놓였다. 하수 쪽에도 택상과 의자가 있고 낮은 탁자가 벽면에 붙어있다. 

상하수 쪽에 등퇴장 로가 있고, 배경에도 창 같은 공간과 등퇴장 로가 있다. 주변에 단풍나무가 여기 저기 심어져 있고, 붉은 낙엽이 바닥에 잔뜩 깔렸다. 집은 배경의 정원길을 돌아 상수쪽 골목으로 해서 객석 가까이에 있는 입구로 들어오고,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

박완규가 에릭, 김원정이 바네사, 장석환이 지미, 권태권이 워릭, 선종남이 빅터 한스, 구도균이 피크, 이호철이 레오, 이승헌이 고든 외, 하지은이 카렌, 장승연이 에이미로 출연한다. 출연진의 성격설정과 호연은 물론 개성미가 제대로 돋보이는 공연이다.

조연출 장한새, 무대 신승렬, 조명 최보윤, 음악 장한솔, 음향 이현석, 의상 EK, 분장 장경숙, 조연출보 심보람, 그래픽 박태양, 티켓매니저 주예슬, 기획 임예지, 작품개발 우란문화재단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배다의 Thomas H Cook 작, 김도영 각색, 이준우 연출의 <붉은 낙엽(Red Leaves)>을 관객이 몰입해 감상할 수 있는 한편의 걸작 추리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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