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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54] 극단 제의-놀이 코티, 이상희 연출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5-26 10:13:52
  • 수정 2023-02-15 07: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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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스테이지 1관에서 극단 제의와 놀이 코티의 박윤초 작창지도, 박계배 예술감독, 공동창작, 이상히 연출의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를 관람했다.

박윤초(朴倫初) 명창은 김소희 명창과 박석기 명인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주지하듯이, 김소희 명창은 현대 판소리사의 거목이며, 박석기 명인은 동경제대 출신의 엘리트로 국악인의 후원자이자 그 자신이 거문고의 명인이기도 했던 예능인이다. 부모로부터 상당한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데다 후천적인 노력을 더해 온 그녀는 여러 분야에 두루 능한 다재다능한 재주꾼이다. 박윤초 명창의 아호는 금란당(琴蘭堂)이다. 인간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다.

숙명여고,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950-1994 인간문화재 김소희의 판소리, 음악, 무용 등 사사, 한영숙, 이매방 전통무용사사, 성금연, 함동정월 가야금 사사, 중앙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단국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등 강사역임, 전남대학교 국악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박계배 예술감독은 상명대학교 예술학박사다. 호원대학교 문화예술대학장, 공연미디어학부장, 연기전공책임교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이사,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한국연극협회 제22대, 23대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국립극장 이사, 국립극단 이사 등 역임했다.

주요연출작품으로는 <리타 길들이기>, <상화와 상화>, <아! 이상>, <끽다거>, <윤동주>, <라쇼몽>, <진짜 신파극>,<천년제국 1623년>, <왕은 돌아오지 않았다>, <빵집 마누라>, <전쟁터의 피크닉>, <블루 룸>, <백양섬의 욕망>, <프랭키와 자니>, <편지>, <지워진 얼굴>, <이듬해 이맘때>, <김장하는 날>,<목화마차>, <오늘같은 날>, <덤 웨이터> 그 외 다수작을 연출했다. 2013 대한민국연극대상 특별상, 2010 서울시문화상 2008 예총예술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상희는 극단 목화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현재 극단 코티의 대표이고 극단 집현은 아내 최경희 배우가 대표다. 이상희는 중요무형문화제 90호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전수자다. 소놀음굿을 활성화시키고 연극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했다. 전통예술의 현대적 수용을 위해 1999년부터 코티를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하고, 2005년부터 세계 20여 개국 30개 도시를 순회하며 우리의 전통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코티의 단원들은 극단 집현의 단원이기도 하다.

<운현궁에 노을지다> <날짜변경선> <트라우마 IN 인조> <바리 세상 밖으로> <미스터 옹을 찾아라> <리어왕> <맥베스> <햄릿 코리아> <메데아> <왕에게> <한여름 밤의 꿈> <골생원> <햄릿> <애랑야곡> <황진이 신곡> <산시> <광대 이야기> <북치고 장고치고> <무하유지향-호질> <배비장전> <낙상매> <엄마의 하늘> <장릉의 지문> 외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건국 100년이 넘은 16세기부터 조선 사회는 체제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양반-상놈 신분구조가 고착화된 탓에, 평민들은 웬만해서는 출세를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이 이런 사회구조에 일격을 가했다. 전쟁으로 인해 사회구조가 타격을 받은 데에다가 서민들이 의병활동에 대거 가담함에 따라, 전쟁 직후인 17세기부터 서민의 지위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공업이 부흥함에 따라, 17~18세기에는 서민들 중에서 벼락출세를 이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가가 권장하는 출세 코스인 과거시험이나 군공을 거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터부시 되던 상공업을 통해 출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사회질서가 얼마나 동요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이 시대에는 아무리 양반가의 후손일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책을 덮고 남의 땅에서 품삯을 받고 일해야 했다. 이 때문에 17~18세기에는 신분이동이 매우 활발했다. 돈으로 양반 족보를 사고파는 것은 이 시기의 특징적인 현상이다.

<심청전> 등장인물들의 출세도 과거시험이나 군공 같은 정상적인 루트를 거친 게 아니었다. 옥황상제가 돕고 용왕님이 돕는 등, 체제외적(外的)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이동이 발생했다. 왕조의 전통적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신분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17~18세기 서민들의 출세 역시, 옥황상제나 용왕의 도움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제외적이고 비정상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17~18세기는 조선·청나라·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신분이동이 활발하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평민과 귀족의 권력교체가 발생했다. 급격하고도 대대적인 신분이동은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트렌드였다.

<심청전>의 작가는 그같은 사회실정에 착안하여 심청이의 벼락같은 인생역전극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런 설정이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심청전>이 17~18세기 독자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심청전의 작품 집필에서 공연 그리고 수정한 대본으로 결말을 맺기까지로 구성되었다. 작품을 최초로 부탁한 대사헌은 왕 앞에서 공연할 작품을 전기수라는 작가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대사헌은 신분상승이나 반상의 타파를 절대 반대하는 정치가다. 그러나 정조 임금 당시 양반 상민은 이미 신분자체를 중시하지 않고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기에, 작가는 대사헌의 금전세례에 심청전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앉은뱅이로 심청의 아버지인 심학규를 설정하고, 불어난 개울을 건너다 익사 직전에 한 승려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승려는 300석을 시주하면 심학규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 약속한다. 심학규는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딸 청이에게 고백한다. 이로 인해 청이는 사공들에게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제사 물로 팔려간다. 바닷물에 빠지자 옥황상제는 청의 효성심에 감복해 용왕에게 청이를 살려내도롤 하명한다. 그 결과 청이는 임금에게 불려가 왕비가 된다. 심학규가 앉은뱅이들을 대궐에서 초청한다는 소식에 대궐로 간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심학규는 왕비가 청이인 것을 알게 되고 기쁨에 넘쳐 앉은 뱅이상태를 벗어난다. 왕은 이 공연을 보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대사헌은 일개 서민의 딸이 왕비가 되는 것에 분노한다. 대사헌은 전기수를 체포해 차마 임금 앞에서 칭찬을 받았기에 죽이지는 못하고 작가의 눈을 뽑아버린다. 맹인이 된 작가....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작가인 전기수는 젊은 작가에게 부탁한다. 심청전의 심학규를 앉은뱅이가 아니라, 맹인으로 설정하도록.....

이민재가 심학규, 이상희가 작가인 전기수, 최경희 승상부인과 무당, 승의열이 대사헌, 석호진이 청이 엄마 뺑덕어멈, 변민지가 승상부인 무당, 이창훈이 젊은 작가, 신동환이 자객 의원 악사, 정예슬이 심청으로 출연해, 성격설정에서부터 호연과 열연 그리고 기량 넘치는 연주로 해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프로듀서 무대 의상 최경희, 사진 최종규, 드라마트루기 김지영, 의상 분장 김종한, 음악감독 신영길, 안무 최태선, 작곡 황종하, 무대감독 김선국, 조명감독 송훈상, 조명오퍼 황요셉, 음향오퍼 김현재, 분장 최지원, 조연출 김송이, 조연출보 양승동, 기획 유선자, 홍보 김세응, 미디어기록 김문재, 진행 고도연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제의와 놀이 코티의 박윤초 작창지도, 박계배 예술감독, 공동창작, 이상히 연출의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를 창의력과 연출력이 넘치는 탁월한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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