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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7]극단 그린피그의 진우촌 작 윤한솔 연출 ‘두뇌수술’
  • 박정기 본지 자문위원
  • 등록 2020-09-11 13:02:55
  • 수정 2020-09-11 1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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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그린피그의 연극 ‘두뇌수술’은 ‘대뇌 교환 수술’이라는 발상부터 황당하고 기발하다. 일제강점기에 극작가 겸 시인, 소설가로 활동한 우촌 진종혁(1904~?)이 1945년 12월 잡지 ‘신문예’ 창간호에 진우촌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동명의 희곡을 연출가 윤한솔이 무대에 올렸다.


윤한솔(1972~)은 2011 제 2회 두산연강예술상, 2012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2013 서울연극협회 올해의 연극인상 수상자며, 극단 그린피그 대표다.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 ‘망각의 방법’ ‘두뇌수술’ ‘치정’ ‘안산순례길’ ‘1984’ ‘젊은 후시딘’ ‘두뇌수술’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진과 준’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연극은 외과의사 ‘오 박사’가 반편이로 태어난 부잣집 아들 ‘상도’와 가난하지만 총명한 시골청년 ‘무길’의 두뇌를 교환하는 수술을 한 뒤 벌어지는 소동을 다뤘다. 상도의 정신이 온전해질 거라 기대한 그의 부모는 자신이 무길이 같다고 헛소리를 하는 상도를 보며 불안해한다. 무길의 약혼녀와 부친은 병원 소사와 간호부에게 사정해 무길을 만나지만 그가 반편이처럼 행동하자 충격에 빠진다.



‘두뇌수술’은 해방 직후 일제 청산이 지상과제였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일제가 조선인을 상대로 벌였던 ‘내선일체’ 운동을 두뇌수술에 빗댄다. 


극중 ‘신문기자’의 입을 빌려 “현대 의학이 육체는 수술할 수 있지만 정신은 수술하지 못한다”는 말로써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개조하려고 했던 야망을 꼬집는다. 


원작은 “오늘부터 선생(오 박사)은 그 위대한 연구의 재주로써 새 환자를 취급하라”는 그 ‘신문기자’의 당부와 함께 희망적인 메시지로 끝을 내지만 작품의 결말을 바꿨다. 


연극은 극 중 외과병원의 사무국장인 한서방 역 배우가 혜화동1번지 극장 입구에서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을 극 중 외래환자로 간주하고 “원장선생님이 세계의학계를 놀라게 할 두뇌교환 수술을 집도하기 때문에 당분간 외래환자는 볼 수 없으니 돌아가 달라”라는 취지의 안내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요즘 의사진료거부 사태와 흡사한 극이 아닌가 하고 관람하게 된다. 



극 중 한 신문기자가 역사적인 두뇌교환 수술을 ‘1백만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보도하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수술은 그러나 부잣집 부모들이 기대했던 결과를 내지 못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그리려고 한 것은 “조선인의 몸에 식민시대의 일본인 모습이 들어왔지만 조선인은 조선인일 뿐 변함이 없다”라는 얘기다. 


극 중 기자는 의사의 수술이 실패한 후 “의사는 두뇌교체 수술까지 할 정도의 좋은 재주를 각종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외래환자를 돌보는데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윤 연출가는 두뇌수술, 곧 일제의 정신개조운동에 동참한 인물을 용서하고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식으로 성급하게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보다는 그 신문기자의 대사가 끝나기 무섭게 ‘갱단의 총격, 슈퍼맨의 등장 같은 영화’ 요소를 집어넣었다. 극의 마무리에 등장인물들이 백색의 띠로 눈을 가리고 ‘희망의 나라’를 합창하는 장면에선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은 1940년대 유성기 녹음기록 등의 사료를 통해 재현한 당시의 독특한 말투와 근대 신파극에서 했음직한 대사와 과장된 연기로 시종일관 연극을 이끌어 간다. 


무대는 4각으로 동선을 정하고 거기에 대소도구를 배치하고, 바로 관객의 의자도 동선 가까이 배치해 마치 병원 환자가 관극을 하는 느낌으로 연출된다. 등장인물의 의상도 베옷 색깔과 백색으로 통일을 하고, 부잣집 부부만 흑색 정장과 무늬 한복을 입고 등장한다.


권태건, 김원태, 김청순, 신재환, 이동영, 이주형, 이지원, 정양아, 정연종, 최문석, 최지현, 황미영, 최주연 등 출연자 전원의 독특한 신파조 대사와 과장 점철된 동작은 희극의 새롭고 색다른 장르를 개척한 느낌이다.


조연출 정유진, 조명디자인 우수정, 음향디자인 전민배, 의상디자인 김경희, 기획 이윤숙, 홍보 박보람 김민경, 티켓 노지희  김민경, 무대감독 김동영, 그래픽디자인 워크룸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그린피그의 진우촌 작 윤한솔 연출의 ‘두뇌수술’을 연출력과 연기력이 폭발하듯 무대를 가득 채운 한편의 창아기발(創雅奇拔)한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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