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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5] 2020 서울연극제 창작공동체 아르케, 김승철 재구성 연출 ‘전쟁터의 소풍’
  • 박정기 본지 자문위원
  • 등록 2020-05-16 11: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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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2020 서울연극제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페르난도 아라발 작, 김미라 번역, 김승철 재구성 연출의 ‘전쟁터의 소풍’을 관람했다.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rabal, 1932~ )은 에스파냐 태생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 영화제작자다. 마드리드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55년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그곳에 정착했다. 1959년에 첫 작품인 전쟁의 공포와 한 가족의 즐거운 소풍을 대비시킨 풍자희극 ‘전쟁터에서의 소풍(Pique-nique en campagne)’이 공연되면서 프랑스 전위주의 작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초기 희곡 중 예수의 전기를 희극적으로 묘사한 ‘자동차 묘지(Le Cimìetière des voitures)’(1958)에서는 등장인물이 외양은 어린이처럼 보이지만, 순진무구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로, 성매매를 하거나, 살인자 또는 고문을 자행하는 자들이다. 1960년대 중반에는 ‘공포극(Théâtre Panique)’이라고 부르는 형식의 극작을 했다. 


‘건축가와 아시리아의 황제(L'Architecte et l'empereur d'Assyrie)’(1967)에서는 2인의 등장인물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 해 보는 연극이고,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Et ils passèrent des menottes aux fleurs)’(1969)에서는 정치적인 색깔로 점철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67년 에스파냐 여행 중에 자신이 강제투옥 당했던 일을 내용으로 쓴 희곡으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소설인 ‘바빌론의 바알 신(Baal Babylone)’(1959)은 파시즘 치하의 에스파냐에서 보낸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고, 1970년 그는 이 소설을 ‘죽음이여 만세!(Viva la Muerte!)’라는 시나리오로 바꿔 영화로 제작했다. 페르난도 아라발은 희곡집 12권과 소설, 시나리오, 시, 그리고 독재자 카스트로에게 부친 비난편지로 유명하다.
 
김미라(동의대 불문과)교수가 20년에 걸쳐 페르난도 아라발(66)의 희곡 50편을 번역, ‘아라발희곡전집’(고글발행.전7권.사진)을 펴냈다.베케트, 이오네스코를 잇는 프랑스 부조리극 작가로 꼽히는 아라발은 ‘나는 부조리극 작가가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공황연극’이라며 비극과 익살, 불경과 신성, 공포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제전(祭典)으로서의 연극이라고 설명한다. 아라발은 국내 연극계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가이지만 금기시되는 성과 폭력을 대담하게 묘사, 인간 본성을 깊이 통찰케 한다. 


김 교수는 대학 2학년 때 처음 아라발을 읽은 뒤 이 한 작가만 탐구해 왔다. 그는 “80년대 국내에서 공연된 아라발의 초기작품이 작가 내면의 탐색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번 전집에서 새로 소개되는 작품에는 보다 정치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서, “아라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승철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배우이자 작가 겸 연출가로 현재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대표다. ‘전쟁터의 소풍’ ‘툇마루가 있는 집’ ‘소풍’ ‘수갑 찬 남자’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 ‘평상’ ‘피의 결혼 콜라주’ ‘벚나무 그늘 아래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몰락 사’ ‘전하의 봄’ ‘안티고네’ ‘그류? 그류?’ ‘팝콘’ ‘전하’ ‘놀이로 풀어본 맹진사댁 경사’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 ‘즐거운 나의 집’ ‘전야제’ 등을 연출했다. 


2008 밀양여름예술축제 젊은 연출가전 대상 연출상, 2015 서울연극인대상 연출상, 2015 공연과 이론 작품상, 2015 창작산실 대본공모 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한 발전적인 앞날이 예측되는 작가 겸 연출가다.


‘전쟁터의 소풍’에는 원작에는 없는 칼이라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한 여인을 등장시킨다. 마치 폐기물 수집 장 같고 고물상 같기도 한 전쟁터에 다른 등장인물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관객에게만 보인다는 설정이다. 폭탄이 투하되고, 집중 사격을 받아도 칼은 끄떡없다. 그리고 연극의 도입에서부터 대단원까지 그녀의 연주에서 극이 시작되고 마무리가 된다. 주인공인 병사 자뽀도 여성으로 바꾸어 등장시킨다. 


자뽀는 파수병 역할을 한다.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어 전화통화로 상관에게 보고를 한다. 자뽀를 지켜보는 칼은 아코디언을 내려놓고 긴 줄에 매어놓은 그네를 타기도 한다. 반면에 주인공인 여 병사 자뽀는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바로 이 전쟁터로 자뽀의 부모가 음식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다. 당연히 자뽀는 부모의 등장에 눈물이 나도록 반갑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찾아오면 안 된다는 말을 부모에게 하지만 먹음직한 음식을 두고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바야흐로 자뽀와 부모의 ‘전쟁터의 소풍’이 시작되면서 적병 제뽀가 포로로 잡힌다. 제뽀는 자뽀 또래의 남자병사로 인물이 반듯하고 선량한 품성을 지닌 듯 보인다. 부모의 권에 따라 적병 제뽀의 팔다리를 결박하지만, 똑 같이 굶주림에 허덕일 게 뻔한 제뽀를 옆에 두고 자뽀 가족만 맛난 음식을 먹기에는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닌 듯싶어 부모의 권유로 제뽀를 다시 풀어주고 함께 음식을 든다. 그때 위생병 2인이 순찰을 하듯 등장을 하고, 제뽀는 재빨리 숨는다. 


남녀 위생병이 개그 코미디를 하듯 관객을 폭소로 이끌다가 퇴장을 하면, 자뽀의 부모는 축음기를 틀고 음악에 맞춰 서로 끌어안고 춤을 추고, 자뽀와 제뽀는 뜨개질과 꽃을 꽂으며 한층 가까워질 때 돌연 폭발음과 함께 집중사격소리가 들리며 무대는 연기에 뒤덮인다. 연기가 가라앉으면 자뽀와 제뽀 그리고 부모가 모조리 총격을 받고 절명해 바닥에 쓰러진 모습이 드러난다. 칼이 충격을 받아 아코디언을 떨어뜨리고, 이 때 위생병이 등장해 죽은 사람들의 구두를 당가에 담아 퇴장하면, 혼자 남은 칼의 허탈하고 서글퍼하는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영경이 여병사 자뽀, 박시내가 여성아코디언 연주자 칼, 이경성이 자뽀의 어머니, 이형주가 자뽀의 아버지, 박정인이 적병포로 제뽀, 김관장이 위생병1, 정다정이 위생병2로 출연해 각자 성격창출은 물론 혼신의 열정을 다한 호연과 열연 그리고 율동과 무용은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우레보다 큰 갈채를 이끌어 낸다. 주인공 자뽀 역의 김영경의 일생일대의 명연은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역할은 물론 관객의 기억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대디자인 박찬호, 음악감독 공양제, 조명디자인 김성구, 움직임 양은숙, 사진 그래픽 김 솔, 제작지원 정다정, 기획 한가을, 홍보 윤슬기, 무대감독 이홍재, 진행 이승은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드러나,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페르난도 아라발 작, 김미라 번역, 김승철 재구성 연출의 ‘전쟁터의 소풍’을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원작을 능가하는 연극으로 창출시키고, 유럽 본고장에 내 놓아도 좋을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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