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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74]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 터'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2-21 09:28:21
  • 수정 2024-04-10 23: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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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내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 터 표지석[박광준 기자] 제중원(濟衆院) 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있던 자리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66 일대에 해당한다. 제중원은 1885년(고종 22) 고종(高宗)이 알렌(Horace Newton Allen)의 제안을 받아들여 건립한 근대식 병원이다. 


1894년(고종 31) 에비슨(Oliver Avison)의 건의로 경영권이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됐다. 1904년에는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지금의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자리로 이전했고, 명칭도 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었다.


제중원은 설립 당시에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산하의 광혜원(廣惠院)이라는 명칭으로 개원했으나, 2주 후인 3월 12일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처음 진료를 시작한 곳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인 갑신정변의 주역 홍영식(洪英植)의 집이었다. 이후 제중원을 찾는 환자의 수가 늘어나자 조선 정부는 1886년(고종 23) 제중원을 지금의 KEB하나은행 본점이 있는 한성 남부의 왕실 소유 부지로 이전했다. 


개원 이후 알렌은 선교의(宣敎醫)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과 헤론(John Heron)의 도움을 받아 진료를 확대했고, 1886년에는 여의사 엘러스(Annie Ellers)가 조선에 파견되어 부인부(婦人部)를 설치할 수 있었다.


1887년 알렌이 주미공사(駐美公使)의 일원으로 출국하면서 병원의 업무는 헤론이 전담했고, 부인부는 엘러스의 결혼으로 호튼(Lillias Horton)이 담당하게 됐다. 1886년 3월 29일에는 제중원의학당(濟衆院醫學堂)이 설치돼 서양식 의학을 교육했으나 1890년에 의학교육은 중단됐고 졸업생은 배출되지 못했다. 


서울역 앞에 있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또 같은 해에 헤론이 병사하자 캐나다에서 파견된 빈튼(Charles Vinton)이 제중원의 업무를 이어받았고, 1893년에는 다시 추가로 파견된 에비슨(Oliver Avison)이 이를 주관하게 됐다.


1894년에는 에비슨의 건의로 경영권이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됐다. 이후 제중원은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의 재정지원을 받아 1904년에 지금의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이 있는 남대문 밖 복숭아골로 이전했고, 명칭도 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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