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서울시 구석 구석 228]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2-09 21:18:37
  • 수정 2024-04-10 22:16:36

기사수정



[우성훈 기자]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三角洞 都片手 李承業 家屋)은 1867년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都片手, 목수의 우두머리) 이승업(李承業)이 1860년대 중구 삼각동에 지은 중인계층의 가옥이다. 





1970년 ‘조흥은행관리가’라는 명칭으로 조흥은행 사료관이 됐고,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건축기술과 장식면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조선 말기 중인계층 주택의 시대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이 가옥은 1860년대에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 이승업의 집으로 원래 청계천 부근의 중구 삼각동 36-2번지에 있었다. 1889년 이후 경주이씨 집안의 사람들이 거주해 오다가, 1970년부터 조흥은행 사료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 개장했다.




이 집은 원래 안채, 사랑채, 행랑채, 안채아랫채, 사랑아랫채, 사랑뒷채, 사잇담 등 총 8개의 건물로 구성된 큰 규모의 가옥이었다. 현재는 상당 부분이 헐리고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중문만 남아 있다.


안채의 방 배치방식은 서울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ㄱ자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정면 4칸 측면 5칸 크기의 집이다. 안방, 대청, 건넌방, 윗방, 부엌이 있고, 집의 앞뒤에는 툇마루와 쪽마루를 두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인데, 사랑방.대청.방이 각각 정면 1칸, 측면 1칸 반 크기로 이어져 있고, 방과 대청 앞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가 길게 나 있다. 사랑방 뒤에는 1칸의 침방이 있던 것을 나중에 아궁이부엌 칸으로 바꾸었다.


목수가 지은 집답게 장식적이고 정교한 부재들로 치밀하게 구성됐다. 지붕의 높낮이와 모양을 공간의 중요도에 따라 다르게 만들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조선 후기 서울의 주거문화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집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20호로 지정됐다./사진-우성훈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