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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14] 홍수를 대비하는 기능을 가진 '수표교'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2-06 09:44:07
  • 수정 2024-04-10 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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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수표교는 세종 2년인 1420년에 만들어진 다리로 수위를 측정해 홍수를 대비하는 기능을 가진 중요한 다리였다. 


수표교가 만들어질 당시 이 지역에는 소와 말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전교라 했다. 세종 23년인 1441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수표를 만들어서 다리 서쪽에 세웠고 이때부터 수표교라 불렸다.




수표교(水標橋)는 1420년(세종 2)에 놓아진 청계천의 돌다리이다. 1441년(세종 23)에 수표(水標)를 제작해 다리 서쪽에 세우고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해 홍수를 대비하게 한 뒤로, 다리가 수표교로 불리게 됐다. 1760년(영조 36)의 수표교 수리 때는 다리의 기둥에도 경(庚).진(辰).지(地).평(平)표시를 해서 물의 깊이를 쟀다. 이처럼 수표교는 물길을 건너는 통로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한 수량 측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수표교의 기둥은 모두 9줄 5열로 배열했고 돌기둥 위에는 양끝을 반원형으로 다듬은 굵고 긴 돌을 세로로 걸쳐 놓았다. 그 위에 바닥 돌을 가로세로로 짜 맞춰 바닥면을 구성했다. 바닥의 양쪽 언저리에는 돌난간을 세웠고 난간을 구성하고 있는 부재는 연꽃봉오리.연잎 등을 모티브로 해 설계됐다. 이는 조선시대 돌난간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른 것이다.


수표교 곳곳에는 정해개조, 무자금영개조 등의 글씨가 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차례 개보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홍제동으로 잠시 이전됐다가 1965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1973년 6월 7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의 수표교는 물을 건너는 다리 본연의 기능으로서 뿐만 아니라 수량을 측정해 홍수를 조절하는 구실도 하는 중요한 다리였다.


수표교는 길이 27.5m이고 폭은 7.5m, 높이 4m에 화강석으로 만든 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맞춘 구조이다. 기둥 아래의 돌기둥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위는 고르게 다듬은 네모난 돌이고 아래는 거칠게 다듬은 네모난 돌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위의 돌 모서리는 물의 방향과 마주하게 배열되어 있다. 이는 저항을 줄여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위한 설계로, 수표교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난간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난간은 궁궐 등 격식이 필요한 다리에만 설치되던 것으로 일반적인 다리에 난간을 만드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다리 난간은 연꽃과 연잎 등을 주제로 만들었고 이는 조선시대 돌난간의 전형적인 형식으로서 그 모양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수표교는 중국하고도 인연이 있다. 서울에 중국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부터이다. 이들은 정착 초기에 수표교 남북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 이 근방의 지역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한 차이나타운이었다.



장충단공원(奬忠壇公園) 수표교(水標橋)는 조선 초기에 건축된 청계천(靑溪川)의 돌다리로, 다리의 기둥에 눈금을 긋고 그 옆에 수표를 세워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했다. 원래 청계천(靑溪川)2가에 위치했으나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홍제동으로 잠시 이전되었다가, 1965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2003년 6월에는 청계천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청계천 위에 원래의 수표교를 본떠 만든 새로운 수표교가 건축됐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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