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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12] 스크랜턴이 정동길에 설치한 '시병원' 터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2-06 08:00:45
  • 수정 2024-04-10 22: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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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구청

[박광준 기자] 시병원(施病院) 터는 1885년 의료선교사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이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일대에 설치한 시병원이 있던 자리로, 이후 시병원은 1895년 남대문로에 있던 상동병원(尙洞病院)에 통합됐고, 해당 건물은 1930년 무렵까지 여러 외국인 선교사가 거주했다.


시병원(施病院) 터는 1885년 의료선교사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이 1885년에 세운 시병원이 있던 자리이다. 지금의 정동교회가 있는 곳과 바로 이웃하는 자리로서, 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의 서쪽 일대이다.


스크랜턴은 미국 북감리교회 의료선교사로 1885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선교활동의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공사관의 주선으로 정동에 독립가옥 2채가 딸린 약 6,000㎡의 대지를 사들였다. 그 서쪽 집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내외가 사용하고, 동쪽 집은 가족인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 여사 등 일행이 사용했다. 이어 정동 32번지 일대의 언덕 또한 매입했는데, 이곳이 바로 이화학당(梨花學堂)이 들어서는 자리이다.


한편 스크랜턴은 미국에서 보낸 의료기기와 약품이 도착하자 1885년 9월에 우선 자신의 집에서 의료 활동을 개시했다가, 1886년에는 ‘동쪽으로 붙은 집’을 사서 수리한 후 정식으로 병원을 개원했다. 아펜젤러가 운영하던 이 작은 병원에 ‘시병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887년 3월 무렵이었다.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스크랜턴 자신의 한자식 이름이 ‘시란돈(施蘭敦)’이라는 점과, ‘시(施)’라는 것이 ‘베풀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데서 따온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스크랜턴 스스로는 병원을 ‘유니버설 호스피탈(Universal Hospital)’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더 코리언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 1892년 8월호에 제8회 감리교선교회연차총회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정동병원(The Chong Dong Hospital)’이라는 항목에 '입원 1,000명, 진료소환자 2,224명, 합계 3,224명'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라 정동병원이 시병원의 다른 명칭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시병원은 정동에서 1895년까지 약 10년간 운영됐다. 이후 메리 스크랜턴이 1889년 주로 서민층들이 모여 사는 남대문로 주변의 상동지역, 지금의 상동교회 일대 약 7,300㎡의 대지를 사들였고, 이를 고쳐 1890년 10월에 상동병원(尙洞病院)을 개설했다. 평소 상주인구가 많은 상동으로 자신의 병원을 옮기기를 갈망했던 스크랜턴의 바람에 따라, 시병원은 1895년 상동병원에 통합됐다.


그 후 스크랜턴은 1907년에 친일성향이 농후했던 감리교 선교부의 해리스(M. C. Harris) 감독과의 의견충돌로 선교사와 목사직을 사임하고 성공회로 옮겼다. 국내와 중국 등지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1917년에 일본으로 건너간 후 1922년에 고베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스크랜턴의 말년 행적에 대해서는 국내에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매일신보(每日新報)'에 1913년 1월부터 3월경까지 시란돈병원(施蘭敦病院)에 대한 광고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무렵까지는 의료 활동을 지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크랜턴이 떠난 시병원 자리에 정동교회가 건립됐다는 자료들이 많이 전해지지만 옛 시병원이라고 지칭되는 한옥건물이 정동교회의 준공 이후에도 존재했던 것을 보여주는 사진 기록들이 남아있다. 또한 '더 코리언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 1930년 5월호에 블록(M. Bernita Block)이 쓴 '아무도 모르는 집(The House Nobody Knows)'이라는 글을 보면 시병원 건물이 이후에도 외국인 선교사의 거주지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병원 터는 한국 근대의료와 여성교육에 공헌한 스크랜턴 가족이 처음 개설한 병원이 있던 자리라는 점과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인 정동교회와 관련 깊은 자리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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