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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92] 신아기념관(구 신아일보사 별관)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4-02-01 12:03:54
  • 수정 2024-04-10 21: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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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신아기념관(구 신아일보사 별관)은 1930년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축된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미국기업인 싱어미싱회사 한국지부로 사용되다가, 1963년 신아일보가 매입해 1975년 3, 4층을 증축해 별관으로 사용한다. 신아일보는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됐다.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경향신문사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정동극장 옆으로 붉은 벽돌의 근대 건축물인 구 신아일보사 별관이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0년대에 만들어져 미국기업인 싱어미싱회사의 한국지부로 사용됐다. 



민간 건축물로는 최초의 지상 2층, 지하 1층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외벽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쌓았다. 일방향 장선 슬라브 구조 및 원형철근 사용 등 일제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남아 있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02호로 지정됐다.


이 건물은 1963년부터 신아일보가 사용한다. 신아일보는 1965년 5월 6일 언론인 장기봉이 창간한 신문으로 창간사에서 ‘상업신문’임을 밝힌다. 신아일보는 당시의 다른 신문과는 다르게 ‘세론(世論)’이라는 독자투고란을 만들었고, 최초로 ‘종교란’을 만들어 종교계로부터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밖에도 ‘수도권백과’나 ‘재계화제’ 그리고 농수산소식.소비자 페이지. 부부교실.부동산 등의 생활경제정보를 싣기도 했다. 신아일보사의 사업 방식도 특이했다. 



다른 사업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신문 수입만으로 경영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해 창간 초기부터 극소수의 인원만으로 신문을 제작했다. 창간 당시 편집국 인원은 18명이었는데, 이들만으로 매일 8면의 지면을 제작해 신문계에서 ‘기적의 신문’이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1980년 11월 신군부가 언론을 통제할 목적으로 언론기관 통폐합을 할 때 신아일보는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되어 1980년 11월 25일에 종간됐다.


지금 이 건물에는 일반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1층에는 신아일보를 기념하는 작은 공간이 마련돼 있으나 들어가지는 못한다. 신아일보 앞 정동길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배경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신아일보 앞, 우산을 쓰고 있는 인우(이병헌 역)에게 태희(이은주 역)가 달리는 자전거를 피해 뛰어 들어온다. 그리고 당돌하게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한다. 이날 헤어지고 난 후부터 인우는 태희를 잊지 못해 정동길을 혼자 헤맨다. 이 영화는 2001년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0위로 기록됐고, 퀴어영화라는 소재를 가져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신아기념관(新亞紀念館)은 1930년대 건립된 것으로 신아일보사(新亞日報社)의 별관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일제강점기의 건축기법과 언론 통폐합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등록문화재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아기념관(新亞紀念館)은 신아일보사(新亞日報社)의 별관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구(舊) 신아일보사 별관’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다.


구한말의 정동은 각국의 공사관이 위치하는 조선 외교의 각축장이었다. 당시 신아기념관 자리는 현재의 관세청에 해당하는 세무청사 사옥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의 사무실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신아기념관 건물이 처음 건립된 것은 1930년대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건물에는 일방향 장선 슬라브(One-way Joist Slab) 구조 및 원형철근 등 일제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남아 있다. 외벽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쌓았다.


신아기념관은 이후 미국기업 싱어미싱회사(Singer Sewing Machine Company)의 한국지부 사무실과 그 상사원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1963년 신아일보사가 건물을 매입했고, 사세가 확장됨에 따라 1975년 건물의 3층과 4층을 증축했다. 이후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로 '신아일보'가 '경향신문(京鄕新聞)'에 통합되는 1980년 10월까지 신아일보사의 별관으로 사용됐다. 현재는 여러 업체들이 입주한 민간사옥으로 이용되고 있다.


신아기념관은 일제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남아 있어 근대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민간건축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지어진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1980년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로 인한 언론수난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사진-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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