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서울시 구석 구석 186] 이완용을 중상 입힌 장소 '이재명의사 의거 터'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1-31 03:37:51
  • 수정 2024-04-10 21:41:23

기사수정

이재명 의사 의거터 표지석[박광준 기자] 이재명(李在明, 1887~1910)은 대한제국기의 독립운동가로,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하기 위해 계획했고, 같은 해 12월 명동에서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을 찌르고 체포돼 사형당한 인물이다. 이재명의사(李在明義士) 의거(義擧) 터는 이재명의사가 이완용을 찔러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힌 장소이다.



이재명(李在明, 1887~1910)은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평안북도 선천 출생이다. 평양의 일신학교(日新學校)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하와이로 갔다가, 1906년 3월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그러나 곧 제 1.2차 한일협약(韓日協約)이 강제 체결되자 귀국한 후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갔다. 그러던 중,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순종(純宗)의 평양 순행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이재명 의사는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李完用)을 찔러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히고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했다.

이재명은 1909년 1월 동지들과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위해 평양역에 대기했으나 안창호(安昌湖)의 만류로 단념했다. 이어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소식을 듣고는 친일매국노의 처단을 계획해 12월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李完用)을 찔러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히고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했다. 1962년 이재명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74, 명동성당입구 우측 보도에 이재명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