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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72] 서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서울 曹溪寺 木造如來坐像) 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2-17 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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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제2162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천연기념물 제9호 조계사 백송-유형문화재 제127호 조계사 석가불도-유형문화재 제128호 조계사 대웅전

[박광준 기자] # 서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돼 있는 목조여래좌상으로,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일본은 조선 불교의 자주성을 박탈하기 사찰령을 제정해 사찰의 인사, 재산관리 등의 권한을 조선총독부가 직접 관장하도록 했다. 이에 한용운 등의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사찰령 철폐와 자주적인 조선 불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 일환 중 하나로 조선 불교 종단에 속한 절들을 총괄하는 최고 기관인 총본산(總本山)을 건립했다. 이를 위해 현재 조계사 부지를 매입해 사찰을 건축했고,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해 사찰의 이름을 태고사(太古寺)라 했다. 이후 태고사는 1954년 불교정화운동을 거치면서 지금의 조계사(曹溪寺)라는 이름으로 개칭됐다.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사진-문화재청

서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은 원래 영암 도갑사에 봉안돼 있던 불상이었다. 1938년 태고사가 총본산의 사찰이 되면서, 태고사의 주존불로 봉안하기 위해 이안됐고, 2000년대까지 조계사의 대웅전 주존불로 봉안됐다. 2006년 대웅전의 새로운 주존불로 대형의 석가여래삼불좌상이 조성되면서 서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은 현재 대웅전 중심 불단의 왼편의 작은 불감(佛龕)에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통도사 은제도금 금동아미타여래좌상'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 등 15세기에 제작된 다른 불상들과 유사한 양식을 하고 있어 15세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크기는 높이 100.6cm, 폭 78.5cm로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로 결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갸름한 얼굴과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이마와 이어진 높은 코, 굳게 맞물린 입술, 촘촘한 나발 등을 통해 우아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사진-문화재청불상의 정수리에는 육계(肉髻)가, 미간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표현되어 있다. 착의(着衣)는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대의를 걸치고 있으며,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 무릎과 다리를 감싸면서 펼쳐져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얹은 채로, 오른쪽 손가락 끝으로 땅을 가르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두었다. 이러한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수인(手印)으로 석가모니가 악마의 방해를 물리치고 성도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은 안정된 비례감, 생동감 있게 연출된 옷 주름 등 조형적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불상일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에 제작된 불상이 얼마 없기 때문에 희소적 가치도 높다. 또한 조선 불교가 전통과 자주성을 지키고자 일으켰던 총본산 건립 운동의 일환으로, 1938년 도갑사에서 이운돼 태고사 대웅전 주존불이 되었 듯이 근대기 한국 불교사에서 상징적 역할을 했던 불상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2022년 4월 26일 보물 제2162호로 지정됐다.


# 조계사 백송(서울 曹溪寺 白松)


백송(Pinus bungeana)은 소나무과의 상록침엽수로 중국 북부 원산이고 한국에는 오래 전에 도입됐다. 



서울 조계사 백송은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됐다. 면적은 126㎡이고 수령을 추정할 수 없는 노거수로, 나무높이 10m, 가슴높이둘레 1.64m이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조계사 백송의 나이는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 14m, 뿌리부분 둘레 1.85m이다.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나무의 한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바로 접해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조계사 석가불도[曹溪寺 釋迦佛圖]


조계사 석가불도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 있는 불화로 2000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됐다.


조계사 대웅전 불단 뒷벽에 걸려 있고, 근대 불교미술작가인 김일섭(金日燮)이 1938년에 그린 대표작이다. 1938년 조계사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봉안했다. 가로 336m, 세로 430m이다.


조계사 석가불도/사진-문화재청조계사 목불좌상(석가불)을 주불로 삼아 그린 영산회상도로, 화면을 2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우견편단(右肩偏袒)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있는 석가불상을 중심에 큼직하게 그리고 하단에는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대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그려 이채롭다.


관음보살의 보관에는 아미타불의 화신인 화불(化佛)과 감로수 병을 표현했고, 지장보살은 민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오른손에 보배구슬을 든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좌우로 사천왕과 석가의 십대제자인 아난과 가섭, 제석천과 범천, 십대제자 중 나머지 여덟 제자를 배치했다.


구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불보살의 형태가 개성있고, 엷은 녹색과 하늘색.주황색 등 담색 계열의 색을 칠해 수채화에 가가운 느낌을 주는 점에서 20세기 초의 탱화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조계사 대웅전


조계사 대웅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찰 당우(堂宇)로, 2000년 9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됐다.



1935년 한용운.박한영.송종헌 등이 중심이 되어 불교 총본산 건립운동을 추진하던 중, 1936년 전라북도 정읍의 보천교(普天敎) 교주 차경석이 죽으면서 법당으로 쓰이던 십일전(十一殿)이 경매에 부쳐지자 이를 사들여 1937∼1938년 조계사의 전신인 태고사(太古寺) 대웅전으로 사용하다가 태고사가 조계사로 바뀌면서 조계사 대웅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단층 석조기단 위에 지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규모가 웅장하고 부재 단면도 크다. 겹처마이고 공포는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식(多包式) 7량 구조이고, 내부 전후면에 8.5m짜리 내진주(內陳柱)를 각 6개씩 총 12개 세웠다. 기단 윗면에는 화강암을 전돌처럼 다듬어 깔았고, 네모난 이중받침 위에 정교하게 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 하단에 석주(石柱)를 끼워넣어 비가 들이쳐 썩는 현상을 막았는데 결과적으로 보천교의 십일전보다 건물이 더 높아졌다.



천장은 소란반자와 외진부에 빗반자를 마련한 우물천장이다. 소란 안에는 학무늬, 봉황무늬, 희자(囍子) 무늬를 그려넣었고 빗반자의 앞면과 옆면 앞부분에는 불화를, 옆면 뒷부분과 뒷면에는 산수화와 화조화를 그려넣었다. 정면 2분합문을 비롯해 4면의 창호 모두 꽃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 문살과 창살로 되어 있다.


안에는 도갑사(道岬寺)에서 옮겨온 조계사 목불좌상(석가불)과 조계사 석가불도가 있고, 후불벽 좌우에는 1978년에 제작한 천불도가 걸려 있다. 현판은 조선 제14대왕인 선조의 여덟째 아들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의 해서체 글씨로, 화엄사 현판 글씨를 그대로 복사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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