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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10-07 22:07:36
  • 수정 2023-12-21 14: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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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사진-문화재청 

[이승준 기자] 통일신라 신문왕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고,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이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기단의 양식은 두 탑과 거의 비슷하나,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 있다.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뤄져 있어, 달라진 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고,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_상륜부 (촬영년도 : 2015년) /사진-문화재청 효소왕 1년(692)에 세워진 탑으로,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만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다시 탑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했다. 


1942년 착수된 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해 많은 유물을  발견했다. 그중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돼 있어 탑의 건립 연대와 조성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됐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과정이 잘 담겨져 있어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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