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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목월의 '나그네'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06-25 02:57:34
  • 수정 2024-02-19 10: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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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목월 [박광준 기자] 1916년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고향은 경상북도 경주시.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갔다가 귀국해 대구 계성중학교,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이후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육영수의 시 선생 노릇을 한 적도 있었고, 육영수 전기를 지었고, 대통령 찬가를 작사해 권력에 아첨하는 어용시인이라는 비판도 듣고 있는 상태. 개인사적으로 박목월은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둘 정도로 다복하지만 가난했다. 


어느 날 집 앞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목월을 보고 장남이 "힘드시죠?"라고 물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호철은 그의 이런 행적에 대해 '가난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옹호하긴 했다.


처음에는 동시로 출발했다. 1933년 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됐다. 그러다가 1939년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파(靑鹿派)를 결성하고 청록집(靑鹿集)이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청록집에 실린 그의 시로는 임,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등이 있다. 청록집이라는 시집은 그의 시 청노루에서 따 온 것으로, 이 시집에 실린 그의 시는 한국적인 서정과 극히 간결하고도 리듬감있는 시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시비/사진-박광준 기자이 외에도 하관(下棺), '내 신발은 십구문 반'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가정' 등이 있다. 군가인 '전우', 포스코 사가, 한국일보 사가, MBC 사가, 신정고등학교의 교가 등의 작사도 했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언제 어디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호인이었다고 한다. 다정다감하고 목소리는 약간 가냘픈 듯 하고, 조용조용한 성품에 원고 청탁을 거절해본 적이 없고, 모든 원고는 꼬박꼬박 본인이 직접 가져다줬다. 


1978년 3월 24일 새벽에 산책하고 집으로 가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박동규다. 박동규 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풍족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자녀들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였다. 가령 만화책을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만화책을 한자루 쓸어담아왔다거나, 서커스가 마을에 오자 몰래 개구멍으로 아들을 들여보내고 자기는 그 개구멍을 들키지않게 서커스가 끝날때까지 가로막으면서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유안진 시인은 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나중에 시인을 추천해서 등단시키는 것에 대해 엄격했던 목월의 면모를 회고했다. 11년 만에 추천 받은 사람, 다시는 이 집에 발길 안 한다고 치를 떨면서 나간 사람, 박목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는 사람도 있었단다.  유안진에게도 처음엔 "유군은 국문과 영문과도 아닌데,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했다가 사는 게 힘들어지고 바빠서 시 안 쓰면 추천한 나는 뭐가 되노?" 라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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