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1] 6.25 특집, 국군 전사자 안치키 위한 육군 국립묘지 ‘현충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6-04 00:53:58
  • 수정 2021-06-04 22:43:23

기사수정

국립서울현충원 전문/이승준 기자[이승준 기자]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늘어나는 국군 전사자를 안치키 위한 육군 국립묘지로 1952년 5월부터 계획돼 1953년 서울 동작동 부지 선정, 1954년 착공, 1956년에 개장, 안장이 시작됐다. 개장 당시의 명칭은 '국군묘지'였다. 1965년 국립시설로 승격돼 '국립묘지'로 불리었다. 이후 2006년에 '현충원'으로 변경됐다. 개장 당시에는 6.25 전쟁 때 전사(戰死)했던 군인, 대한민국 군무원, 종군자 등을 안장하는 위주로 갔었으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순국(殉國)한애국자 및 독립유공자 등의 호국영령을 비롯해 경찰관, 향토예비군 등의 영현까지 안장함에 따라 호국보훈 및 추모시설로 범위를 넓혀나갔다. 


묘역에는 일반묘역과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묘역, 군인 묘역, 경찰 묘역, 무명용사 묘역 등이 있고 현충탑, 현충문, 현충선양관, 충렬대, 전쟁기념관, 무명용사의 탑이 있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이곳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다. 이 추념식에는 대통령, 주요 정치인들과 호국영령 및 독립유공자의 가족,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참석해 현충탑 앞에서 분향 및 헌화 의식을 가진다. 


현충문 전경/이승준 기자

또한, 대한민국 주요 정치인들이 꼭 가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있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그들에게 참배해 경의를 표하는 한편, 국민과 국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소위 신고식 비슷한 시간으로써 새해가 밝거나 현충일이면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과 국무위원이 반드시 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나 여야 당대표, 선거 출마 예정자와 당선자, 장관들의 첫 일정도 현충원 참배로 시작한다. 소위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는 대권주자들도 출마 선언 후 참배하러 온다. 중앙 정치인들 대부분 서울에 거점을 두고 있기에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당선인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역별 당선인은 해당 지역의 국립묘지나 충혼시설을 찾는다.


정치인들은 현충탑에서 참배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치 진영에 따라 전직 대통령 기일에 각 묘소를 찾을 때도 있다. 참배를 마치고 나가면 현충문에 놓여져있는 방명록을 적고 간다. 이럴때는 순수한 추모 메시지 보다는 정치적 메시지 또는 국정 운영괴에 대한 포부, 당면한 시국에 대한 각오 등등을 쓰고 나가는데 그 글귀 등이 화제가 된 적도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어맹뿌' 글씨도 현충원 방명록에서 나왔다 현충원 방명록 통해 본 여·야 정치인들의 새해 메시지 아무래도 대통령을 비롯한 몇몇 주요 정치인들은 TV나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와중에 직접 방명록을 적기 때문에 정치인의 말 한마디를 캐치해내는게 중요한 언론에서는 글귀를 통해 대외적으로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남기는지 그 의미를 유추해 보기도 한다.


우측에서 바라본 현충문상/사진-이승준 기자 

이 곳에 묻힌 전직 대통령들의 기일에마다 열리는 추모식도 이 곳에서 열린다. 그래서 관련된 유족들과 정치인도 방문한다. 일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모식이 열릴 때마다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에는 거의 발걸음하지 않았다. 


외국 국가원수, 정부수반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꼭 찾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그 외에 참배객들과 보훈 유족들이 방문해 복잡하고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국립대전현충원 신설 이후로 일반적인 묘 안장이 중단됐지만, 대전 현충원 포화에 대비해 실내 봉안시설인 충혼당이 2006년 3월에 개원함에 따라 유족의 의사에 따라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유해를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윤승주 일병과 김지훈 일병 등의 유해도 유족의 뜻에 따라 대전 현충원 안장 대신 서울 현충원에 봉안돼 있다. 


충성분수대/사진-이승준 기자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또한 몇년내로 만장이 예상돼 충혼당을 건설중에 있고 서울현충원 또한 충혼당 포화로 인해 제2충혼당을 2022년 1월에 준공해 2024년 개원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대한민국 육군 제52보병사단 예하부대인 52경비대에서 현충원을 경비했으나, 경비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2008년 11월 21일 해체되었다.현충원 안에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와 국군교향악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본부, 그리고 국방부 의장대대의 일부 중대가 근무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최초 안장자는 1956년 무명용사의 유해가 안장됐고 신분이 확인되어 안장돼 있는 최초안장자는 1957년 4월 2일에 11번 묘역에 안장된 강덕수 육군하사 이다. 최초 장군안장자는 박범집 공군 소장이 1957년 4월 28일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경우 4인의 묘가 있다. 1965년 미국 하와이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이곳에 안장됐고, 1979년에는 10.26 사건 이후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장됐고 200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사망한 이후 안장됐고 2015년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망함에 따라 이곳에 안장됐다. 


충성분수대 하단에 민족의 성지임을 상징하는 청룡상/ 사진-이승준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국민들의 참배가 용이토록 서울에 묘역을 마련해 달라고 청원한 것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민주화의 큰 별이 졌다'면서 수락해 특별히 안장됐고, 이 전례에 따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서울에 안장됐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최규하 대통령 만이 남게 됐다. 그 외에 윤보선 전 대통령은 개인의 유언에 따라 현충원 안장을 거부하고 충청남도 아산시 선산에 묻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돼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에 묻혔다.


2021년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4명 전원(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이 서울이건 대전이건 현충원 안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상당한 기간동안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의 유일한 묘소로 남을 전망이다. 대한민국 영부인은 대통령과 합장된다. 1974년 8월 15일 피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육영수 여사가 역대 영부인 중 처음으로 이곳에 안장됐고 2019년 6월 10일에 세상을 떠난 이희호 여사가 남편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 안장됐다. 부군(대통령)이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전직 영부인들 중 유일하게 생존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훗날 사망하면 이곳에 안장될 예정이다. 철도공무원들 중 김재현 기관사가 최초로 이곳에 안장되었다. 


현충탑 전경/사진-이승준 기자 

고인은 1950년 7월에 미 육군 제24보병사단장 윌리엄 딘 육군소장 구출 작전에 참가했다가, 온 몸에 8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공무원 출신으로는 드물게 장교 묘역에 있다. 외국인으로는 석호필(스코필드) 박사가 이곳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고, 장후이린, 위쉬팡도 중화민국 국적으로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다.스포츠계의 유명인으로는 2016년 9월 8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야구 해설가인 하일성 KBO 전 사무총장이 이 곳 충혼당에 안치됐다. 사유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자격이다.


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는 육군 중장, 즉 장군의 신분으로 장군 묘역을 거부하고 유언에 따라서 최초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 묘소가 있다. 묘번은 34489로, 묘지에 들어서는 화강암 비석과 묘 면적 등도 일반 사병의 것과 똑같다. 퇴역 직후부터 평소에도 서울 현충원에 오면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고 부하들은 여기 잠들어 있다면서 통곡을 했다고 하면서, 그래서 채명신 장군이 스스로 자신이 죽으면 여기에 묻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조문을 하면서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위 대통령들과 달리 화장 없이 넓은 묘역에 큰 비석을 쓰는 장성 묘역의 특권을 포기하고 들어간 특례라 비난하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 중 28명이 28묘역에 안장돼 있다. 


현충탑/사진-이승준 기자

중종의 후궁으로 선조의 할머니이자 덕흥대원군의 어머니인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 안에 조성돼 있다. 다만 의도하고 안장한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묘역이 만들어져 있다가 현충원이 조성 될때 의도치 않게 겹친 것으로, 국방부에서 전사자로 판단해 유가족에게 전사통지서가 전달되고 현충원에 안장 처리되는 바람에, 살아있음에도 묘가 먼저 생긴 기묘한 경우도 있다.


퇴역 육군 준장 박경석 장군이 주인공으로, 포로 생활 중 탈주해 복귀해 군생활하면서 자신의 가묘를 가끔 방문해 마음을 다지곤 했다고 한다. 사망할 경우 이 가묘에 그대로 안장될 것으로 보였지만, 지난해 8월에 가묘가 철거됐다. 장성급 장교중 유일하게 위패로 안장된 육근수 육군 준장의 위패도 이곳에 있다. 육근수 장군은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장으로 1953년 7월 금성 전투에서 전사해 사후 준장으로 추서 됐고, 시신을 수습 못해 위패만 모셔져 있다. 백선엽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백선엽이 현충원 안장 대상이고 대전 현충원에 모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970년에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3명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한국전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대통령 및 정부 요인을 암살키 위해 정문인 현충문에 폭탄을 설치하던 중 폭탄이 그대로 폭발해 폭탄을 설치하던 간첩 1명이 사망했고 현충문이 일부 파손된 사건도 있었다. 


현충탑의 높이는 31m이고, 좌우석벽은 제사를 지낼 때 제상 뒤 편에 처넣은 병풍을 상징한다. 탑의 좌측에 위치한 애국투사 5인상은 국권회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순국선열을 상징한다./사진-이승준 기자

# 충성분수대(忠誠噴水臺)


국가의 자유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밑거름이 된 영령들의 위훈과그 정신을 기념해 1976년 11월 제작된 것으로 화강석 수조를 상.중.하단으로 구분 조성했다. 상단은 국가와 함께 불타는 애국 의지로 횃불을 높이 든 젊은이의 사을 비롯해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몸 바치신 애국선열상과 위대한 조국의 어머니상, 나라와 민족의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의 기도상,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애국청년상 등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국민상을, 중단에는 육.해.공군.해병대  및 경찰 예비군 등 국방의 역군상을 조각 민.관.군이 화합해 국토를 방위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뜻을, 하단에는 승천하는 청룡상을 조각해 민족의 성지임을 상징했다. 이 분수대는 높이 13m로, 직경 31.2m의 원형화단과 60개의 노즐로 구성됐다. 남산미술원 원장 이일영 화백이 제작했다.  


우측의 호국영웅 5인상은 국토방위와 수호를 위해 용맹을 떨친 군인.경찰 등의 용사들을 상징하고 있다./사진-이승준 기자# 현충탑


이 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으로서 민족의 성역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위훈을 상징하는 탑이다. 현충탑의 내부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 4천여 위의 호국 용사를 위패로 모시고 있고, 탑 내부 중앙에 위치한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를 찾았으나, 개인별 신원확인이 불가능한 약 7천 여 용사들의 영현을 봉안하고 있다. 


현충탑의 높이는 31m이고, 좌우석벽은 제사를 지낼 때 제상 뒤 편에 처넣은 병풍을 상징한다. 탑의 좌측에 위치한 애국투사 5인상은 국권회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순국선열을 상징하고, 우측의 호국영웅 5인상은 국토방위와 수호를 위해 용맹을 떨친 군인.경찰 등의 용사들을 상징하고 있다. 


영천승천상, 탑 내부 중앙에 위치한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를 찾았으나, 개인별 신원확인이 불가능한 약 7천 여 용사들의 영현을 봉안하고 있다./사진-이승준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