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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터 84] 선희궁터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1-28 03: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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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문화재 제32호


[박광준 기자]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 관련 사당터. 사묘. 시도유형문화재이다.


이 터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의 사묘(祠廟)인 선희궁이 있던 자리로, 처음 의열묘였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선희궁이라 개칭됐고, 육상궁에 모셨던 영빈의 신주를 1908년(융희 2)에 이곳으로 옮겼다. 1975년 5월 12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됐다.



이곳은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신위(神位)를 모시기 위해 건립된 사묘의 자리이다. 사묘는 조선시대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이 그의 모친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말한다. 1764년(영조 40)에 영빈이씨가 죽고 이듬해 의열(義烈)이라는 시호에 추증되면서 사당의 명칭을 의열묘(義烈廟)라고 불렀다. 뒤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이며 영빈이씨의 손자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 다음, 1788년(정조 12)에 그 격을 높여서 선희궁이라 개칭됐다.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으로 신주(神主)를 옮긴 해인 1870년(고종 7)에 폐지됐다가, 1896년에 다시 짓고 신주를 원래대로 옮겨 모셨다. 1906년에는 다시 신주를 육상궁으로 옮기고 나서 사묘를 폐지했다. 그 뒤에 건물만이 온전하게 보존되고 주위 환경은 거의 변했다. 이 터는 서울선희학교에서 개칭된 현재 서울농학교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건물로, 묘역 전체는 훼손되고 건물 주변 일부에 석물(石物)들이 남아 있고, 건물 둘레에 보호 철책을 둘러쳐놓았다. 건물의 기단은 화강석을 고르게 다듬은 긴 댓돌을 3벌 포개어 쌓았고, 그 위에 네모난 주춧돌을 놓은 다음 네모기둥을 세웠다. 주춧돌 사이에도 환기 구멍을 뚫은 돌을 끼워 넣어서 기단 돌처럼 보이게 했다.


기둥 사이에는 3면에 벽을 쌓고 앞면은 개방했는데, 양측면은 바닥에서 박공(朴工: 경사 지붕 옆면에 붙인 널) 부분까지 벽돌로 쌓아올려 만들고, 뒷면은 바닥부터 벽의 중간까지만 벽돌로 쌓고 그 위에 ‘정(井)’자살 창을 칸마다 내었다.


박공 부분에는 용마루로부터 널빤지를 내려서 제사를 지내는 건축으로서 장엄한 인상을 풍기도록 고려했다. 단청과 기와는 1975년에 보수하면서 새롭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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