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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330] 서직수 초상-이항복 해서 천자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5-17 18:36:31
  • 수정 2024-05-18 11: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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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서직수 초상(徐直修 肖像)



서직수(1735-)는 본관은 達城이며, 자는 敬之, 호는 十友軒이다. 영의정 서명균의 조카로서, 진사로 관직에 있지 않고 일생을 시서화를 하면서 보냈다 한다. 


‘서직수초상’ 화면의 오른 편 상단에는 서직수의 自贊이 있어 서직수 62세인 1796년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체를 그린 합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서직수초상’은 동파관에 도포를 입고 흑색 광다회를 두르고, 버선발로 서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입상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부분이 좌상인데 반해 입상(그 것도 실내장면)일 뿐더러, 당대 최고화가들의 합작이라는 점 등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그리고 매우 뛰어난 형태 묘사와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면서도 높은 품격을 보여주어 정조대 초상화의 백미로 꼽히는 걸작이다./사진-문화재청


# 이항복이 손수 쓴 천자문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1607년(선조 40) 이항복(1556∼1618)이 52세의 나이에 장남 이성남(李星男, 1578∼1642)의 장자로 여섯 살이었던 손자 이시중(李時中, 1602∼1657)의 교육을 위해 직접 써서 내려준 천자문이다.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책으로 우리 나라에 언제 전래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음(音)과 훈(訓)을 달아 한자를 배우는 입문서로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됐다. 


이 천자문은 총 126면의 분량으로, 본문 125면과 발문 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는 합지(合紙)로 만들고 밀랍을 칠했고, 표제(表題)는 ‘천자문(千字文)’이라 묵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항복 해서 천자문/사진-박광준 기자앞 면지 이면에 2개의 백문방인(白文方印) ‘청헌(聽軒)’과 ‘월성세가(月城世家)’가 찍혀 있는데, ‘청헌’은 이항복의 6대 종손인 이경일(李敬一, 1734∼1820)의 호이다. 본문은 한 면에 2행으로 행마다 4자씩 8자를 125면에 천 글자를 썼는데 서체는 해서로 송설체(松雪體) 필의를 띠고 있으며 행서 필의도 섞여 있고 이체자(異體字)도 섞여 있다. 각 글자 아래에는 한글로 음훈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은 후대에 서사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끝에는 “정미년(1607년) 이른 여름(음력 4월) 손자 이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노인이 땀을 뿌리고 고생을 참으며 썼으니 골짜기에 던져서 이 뜻을 저버리지 마라[丁未首夏, 書與孫兒時中. 五十老人, 揮汗忍苦, 毋擲牝以孤是意]”고 이항복이 행초서로 쓴 발문(跋文)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제작자와 제작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고, 이항복이 후손 교육에 쏟은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현재까지 전하는 천자문은 목판본과 필사본 두 형태가 있다.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가장 이른 시기의 육필 천자문이자 자경이 8cm 정도로 가장 크게 쓴 육필 천자문으로 서예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한자 밑의 한글 음훈은 이 시기 한글 변천을 연구하는 데 있어 활발하게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국어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라 평가된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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