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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전시3] 선사.고대관/신석기시대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5-04 11:59:44
  • 수정 2024-05-04 12: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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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신석기시대는 약 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었던 시기이다. 신석기인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면서 고기잡이, 사냥, 식물 채집을 통해 먹을거리를 얻었다.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으며 농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일본 열도,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 주변 지역과 정보, 자원을 공유했다. 


# 만년 전후의 한반도



(좌측)멧돼지 모양 토제품/(우측) 멧돼지가 새겨진 토기

그물이 찍힌 토기

동물뼈약 1만년 전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한반도의 지형, 동식물상은 현재와 비슷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추운 기후에 사는 대형 동물이 사라지고 멧돼지, 사슴과 같이 작고 빠른 동물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반, 보관, 조리하기 위해 토기가 만들어졌고 빠른 동물을 잡기 위해 활과 화살이 사용되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와 화살은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다. 


# 바다로 나간 사람들


(아래쪽) 작살 꽂힌 고래뼈/(윗쪽) /작살뼈, (10번) 전남 완도 여서도(2005년 발굴), (11볒) 부산 동삼동(1969-1971년.1999년 발굴)신석기시대에는 빙하가 녹으면서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고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 신석기인들은 자원이 풍부한 강기와 바닷가에서 생활하면서 고기잡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과 도구를 개발했다. 특히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작살과 이음낚시를 사용해 고래, 상어 등 바다동물과 큰 물고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 원거리 교류 


일본 조몬토기, 부산 동삼동(2000년 발굴)

현무암 알갱이가 들아간 토기,  전남 완도 여서도(2005년 발굴)-남해안에서 발견되는 현무암 알갱이가 들어간 토기. 현무암은 제주 지역과 남해안 지역간에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석기인들은 부족한 자원을 주변 지역과 교류를 통해 얻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원의 분포 상황과 이용 방법, 제작기술 등 다양한 정보의 교환도 이루어졌다. 가까운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 일본 열도, 중국 동북 지역 간에는 신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 조개무지



조개무지는 신석기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들이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쓰레기장이다. 조개무지에는 동물이나 물고기 뼈들이 잘 남아있으며 무덤이나 집터, 화덕 자리가 발견되기도 한다. 조개껍질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굴이다. 소라, 전복 등 깊은 바다 속에 사는 것도 발견되는데 이는 잠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바닷가 신석인들의 머리뼈에서 보이는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은 잠수 작업으로 인해 생기는 변형으로 현대의 해녀에게서도 발견된다. 


# 갈판과 갈돌


갈판.갈돌/부산 가덕도(2010-2011년 벌굴)/도토리, 경남 창년 비봉리(2004년 발굴)/가래(경남 창영 비봉리, 2010년 발굴)갈판과 갈돌은 도토리나 가래 등 견과류를 가루로 만들거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되었다. 


# 도토리 저장 구덩이


도토리 저장 구덩이, 경남 창령 비봉리(2004년 발굴)/갈판.갈돌,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경기 안산 신길동(2006-2007년 발굴)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많아 발견되는 식물로는 도토리가 있다. 도토리는 떫은맛이 나는 타닌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날로 먹기 힘들다. 신석기인들은 이를 없애기 위해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닷가 구덩이에 넣어두거나 토기에 물을 채워 담가놓았다. 떫은 맛이 빠지면 공이로 빻거나 갈판과 갈돌로 가루를 내어 조리해 먹었다. 


# 식물 채집과 농사 짓기




식물 채집은 신석기시대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다. 도토리, 가래, 살구 등 다양한 야생 식물을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석기인들은 점차 땅을 일궈 조, 기장 등을 재배했다. 농사는 자연이 주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특정 자원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땅을 일구고 이삭을 거두기 위해 쾡이, 낫 등을 사용했다. 


# 토기의 등장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토기)

바리(동북지역)/함북 청진 유관(1933년 지표조사)토기는 1만년 전 인간이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끓이고 데치고 삶는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져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많아지고 보관, 운반도 이전보다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비교적 오래 머물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 시기와 지역에 따른 변화


신석기시대 한반도에서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토기가 만들어졌다

바리(중서부 자역)신석기시대 한반도에서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토기가 만들어졌다. 기원전 8천 년 경 제주에서 최초로 토기가 출현한 이래, 기원전 6천 년 경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덧무늬토기와 누른무늬토기, 기원전 5천 년 경 중서부 지역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등장했다. 서북, 동북, 중서부, 중동부, 남부 대륙 남해안 등 지역에 따라 생김새와 무늬에 차이가 있으나 시간이 지닐수록 무늬가 점차 줄어드는 공통된 모습도 보인다. 


# 실용과 예술, 토기


토기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담는 실생활도구였지만 산석기인의 예술작품이자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바리/남부내륙지역, 경북 김천 송죽리(1991-1993년 발굴)토기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담는 실생활도구였지만 산석기인의 예술작품이자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겉면에는 점토 띠를 붙이거나 새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하학적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둥근면을 따라 일정한 크기와 형태로 아름답게 배치한 모습은 신석기인의 뛰어난 미적감각과 공간 구성력을 보여준다. 사람의 뼈를 추려 넣은 무덤으로도 사용되었다. 


# 장례


부산 가덕도 유적 41호 무덤에서는 팔다리를 굽혀묻기 한 인골이 발견되었다


부산 가덕도 유적 41호 무덤에서는 팔다리를 굽혀묻기 한 인골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키 160cm를 전후한 40대 남성으로 X자 모양으로 놓인 두 팔에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었다. 


# 무덤


발찌(동물 이삘)/경남 토영 연대도, 1988년-1992년 발굴)


무덤은 죽음에 대한 신석기인의 정신세계를 엿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경우가 많으나 동굴을 무덤으로 아용하거나 뼈만 추려 토기 등에 넣기도 하였다. 신석기인들은 꾸미개로 죽은 이를 치장하고 토기, 삭기 등 필요한 물건을 무덤 안에 넣었다. 


# 장식과 예술


얼굴이 세겨진 토기

여인상, 경남 울산 신암리(1974년 발굴)

조가비 탈, 부산 동삼도(1971년 발굴)

조가비 팔찌, 부산 동삼동(1969년-1971년 발굴)

생활이 안정되며서 신석기인들은 팔찌나 목걸이, 귀걸이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꾸몄다. 또한 사람의 얼굴, 여성, 동물, 배 모양을 띤 예술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꾸미개나 예술품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도 목적이 있지만 집단의 신앙,의례와 관련되거나 소속, 사회적 신분 등을 나타내는 성격이 강했다.


다음 회에서는청동기시대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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