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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으로 만나는 대온실(2)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3-09 21: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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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창경궁 대온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경내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일제가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1909년 건립했다. 철골 구조와 유리, 목재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창경궁 대온실은 근대 건축의 선진성과 제국주의 문화 침탈의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역사적인 시설이다. 2004년 2월 6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대온실 건물의 건립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변환시킨 일련의 작업과 관련이 있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지은 것으로, 1907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바 하야토(福羽逸人)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에서 시공해 1909년 건립됐다.









대온실 앞에 분수를 갖춘 14m×45m 규모의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었고, 춘당대 앞에 못을 파서 춘당지라고 부르고 그 북쪽에 일본식 수정(水亭)을 세웠다. 건물의 설계자인 후쿠바 하야토는 1896년에 건립된 일본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도쿄의 신주쿠어원(新宿御苑)에서 원예 책임자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창경궁 대온실의 형태와 구조는 신주쿠어원의 그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후쿠바 하야토의 계획 안에는 대온실 이외에도 배양실이 그려져 있었고, 실제로 창경궁에는 부속 온실 2개가 더 있었다.






바닥은 본래 벽돌마감이었다가, 1980년대의 시멘트 미장을 거쳐서 지금은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온실의 유지 관리를 위해 각종 기계장치와 창호의 개폐방식에서 당시의 첨단 공법이 도입됐다. 창경궁 대온실은 건립한 지 110년이 지났기에 많은 변화를 거쳤고, 특히 한국전쟁 때에 큰 피해를 입었다.




1961년의 보수공사에서는 창문의 한 틀에 지붕 유리창을 5열씩 배열했던 것을 3열 배열로 바꾸었다. 난방 시스템은 지하실의 석탄 보일러를 썼었다가 좌우측 전실의 석유 온풍기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유리창들을 잘 부지하기 위해 트러스와 주철 기둥, 목재 구조체의 결합에 심혈을 기울였고 백색의 세장한 부재를 사용했던 것은 변함이 없다. 




그 결과 정면 33m,측면 14.65m,높이 10.5m의 커다란 부피임에도 가볍고 날렵한 인상을 갖게 된다. 2013년 문화재청이 실시한 '국가지정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에서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돼 2016년 8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1년 3개월 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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