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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따듯한 연극 ‘우동 한 그릇’ 어떠세요?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1-05 11:34:06
  • 수정 2024-02-12 21: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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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 31일 밤에 이 해 끝날까지 살았던 나의 삶을 뒤돌아보며 점검하면서 지난날 읽었던 ‘우동 한 그릇’이란 책을 손에 잡으니, 가족이 아주 크나큰 어려움에 처했을지라도 가족의 한 명도 낙심하지 않고 성장해야할 어린 자식들까지도 가족 간에 서로 힘을 북돋우어주고 용기를 주며 서로 사랑과 화목을 이루며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가는 모습에 그쳐지지 않는 깊은 눈물이 자꾸만 흐느껴 흘러내린다.


일본 삿포로에 인기 많은 ‘북해정’ 이라는 우동 집이 있었습니다.


그 북해정에 12월 31일 그믐날은 바쁘기만 하다가 밤 10시가 지나서 문을 닫으려고 하는 그때, 새로 사서 입은 듯한 옷을 입은 남자 아이들 둘과 함께 낡은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우동집 주인 부부는 이들을 반갑게 손님으로 맞이했습니다.


여자는 “저...... 우동.....1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라고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두 남자 아이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사람은 이 늦은 섣달 그믐날 밤에 우동 한 그릇만을 시켰습니다.


상냥한 주인 아주머니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네! 우동 1인분!”


난로 바로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했습니다.


무뚝뚝해도 배려심 많은 남편은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어려운 형편임을 짐작하고 우동 한 개에다 반을 더 서비스로 넣어서 넉넉하게 끓여주었습니다.


젊은 엄마에게 우동 한 젓가락으로 살피는 동생의 예쁜 효심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습니다.


아이 둘이서 먹기도 부족할까 하는 우동을 엄마도 잡수시라고 권하는 큰아들이 엄마 챙김도 속이 깊고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어서 좋은 옷, 고운 옷을 입히지 못하고, 그리고 비싼 고기 음식을 못 시켜 주고, 가족 수보다 아주 작은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 줄 수밖에 없는 엄마로서 이 정도밖에 자식을 챙기고 보살필 수밖에 없음에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주인 부부는 이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우동의 양을 더 넣어주는 서비스의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이 이들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되며 살맛 나는 귀한 음식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젊은 엄마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두 아들의 뜨거운 사랑과 가정의 화목이 엄마의 깊은 가슴을 흠뻑 적셔주니까, 엄마가 슬픔이나 눈물이 흐르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힘있게 살아갈 힘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제력은 풍부한데 가정이 화목하려고 해도 가화만사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자 하여도 사랑이 나가지 않고, 오히려 냉랭한 마음이 감돌고, 마음의 평안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여도 평안함이 없는 가정의 가족의 마음에 세모 자는 거울이 되어 환하게 비춰주리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다음 해가 왔을 때는 몰라보게 성장한 형은 중학생 교복을 입었고,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었던 잠바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전에 입었던 낡은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출입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그날처럼 “저……. 우동……. 2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며 “여기 우동 2인분!”



역시 세모 자를 알아보는 주인 아저씨는 지난해처럼 우동 1개를 서비스로 더 넣어 삶아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 세모 자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의 주인 부부에게 들려 왔습니다.


엄마는 그동안의 일을 두 아들에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8명이 부상을 입어서 보험금으로 다 해결이 안 되는 많은 빚을 매달 5만 엔씩 갚아서 내년 4월까지 지급해야 하나, 오늘 전부 지급을 끝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형이 조간 석간으로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동생은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안심하고 열심히 일해서 회사로부터 특별수당을 받아서 앞당겨서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 형! 잘했어요. 앞으로도 식사 준비는 내가 할께요!”


“나도 신문 배달 계속할게요” “동생아 힘내자!”


동생 쥰아, 직접적으로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네가 장을 보아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드렸기에 배고프지 않고 더 힘을 내서 형도 신문배달을 조석으로 할 수 있었고, 그리고 엄마도 아침일찍부터 밤늦도록까지 회사의 고된 일을 매일 연속적으로 힘을 더 내서 할 수 있었기에 빚을 다 지급할 수 있었겠구나!


기특하게도 자발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세식구의 식사준비의 책임분담을 하겠다고 말해줘서 엄마와 형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형에게도 잘했다고 칭찬의 힘까지 줄 줄 아는 쥰아, 대견스럽다. 너를 너무너무 참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형도 자발적으로 신문배달을 계속 하겠다고 엄마와 동생에게 말하고 동생아 힘내자! 그 모습이 용감하고 자랑스럽구나!


참 잘하고 있다고 칭찬과 박수를 아낌없이 보냅니다.


그리고 형은 동생의 학교 참관수업에 엄마 대신 갔었던 일을 감추었는데, 동생의 참관수업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엄마가 회사에 일하러 못가게 된다는 것을 아니까 감추었던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장래에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작문에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란 제목의 글을 썼는데, 그것이 수상을 받아서 참관시간에 동생이 그것을 읽었습니다.


동생은 어른이 되면 일본의 최고의 우동집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인 부부는 보이지 않는 카운터에 이야기가 흘러나와 참을 수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깊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형은 ‘우동 한그릇’ 내용을 다 아니까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동생이 가슴을 펴고 큰 목소리로 읽는 ‘우동 한그릇’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 엄마대신 왔으니까 형에게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형은 ‘우동 한 그릇’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지않아야 됩니다. 형제가 힘을 모아 어머니를 잘 보살펴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동생 쥰과 사이좋게 지내주세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음해 또 다음해에도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이란 팻말을 올려놓고 주인 부부는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은 몇 해 동안이나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수년 세월이 흐른 섣달 그믐날 기다린 희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 기모노 옷차림의 부인이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습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주인 부부는 14년 전의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우동 1인분을 시킨사람입니다. 그때의 ‘우동 한그릇’에 용기와 힘을 얻어 세식구가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시가현으로 이사를 했고, 형은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삿뽀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됐습니다.


동생은 우동집 주인은 되지않았지만 교오또 은행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동생과 섣달 그믐날 셋이서 삿뽀로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 우동을 시키는 인생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계획을 했습니다.


듣고 있던 주인 부부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이 소설을 읽을 때 고등하교 담임을 역임 했을 때, 생각에 떠오른 반의 여학생입니다. 반 여학생의 학부모가 상담을 하러 학교에 방문을 하셨습니다. 80대 할머니가 방문하셔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학생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운명을 달리하셨고, 어머님은 그 충격으로 병원에서 양 발과 손을 매여있는 것이 현실상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조모가 여학생 손녀를 데리고 있으면서 고등학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조모님께서는 교통비는 고모가 지원해주고 있는데도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아침도 굶고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조모님이 손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조모님은 손녀를 위해서 하루 3번씩 집가까운 교회에 가서 기도의 정성을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조모님의 귀한 기도로 여학생은 성격도 아주 밝고 활달하고 친우관계도 원만했고 학교공부도 반에서 1등을 할정도로 우수했습니다.


졸업후에 적령기가 되어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가 있는 가정의 원만한 상대와 결혼해서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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