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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조선후기 ‘왜관’의 세계> 발간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03-22 16: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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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밀한’ 교류와 갈등이 공존했던 왜관의 실상을 통교 상의 불법 행위 사례를 통해 재조명

[박광준 기자]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이영호)은 조선후기 조일(朝日) 통교의 최전선이자 유일한 ‘일본인 체재구역’이었던 부산 왜관(倭館)의 실상과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조선후기 ‘왜관’의 세계>를 발간했다.


임진왜란 후 조일 국교가 재개되면서 조선은 지금의 부산 지역에 왜관을 설치해 이곳을 통해 일본과의 외교·무역 업무를 행했다. 조선후기 일본 측에서 대조선 통교업무를 수행한 것은 쓰시마로, 왜관에는 쓰시마에서 온 남성들이 평균 400~500명, 많을 때는 천명 가깝게 생활했다. 


사신(使臣)으로서 도항해 온 사람들은 대개 수개월 동안 외교의례를 치른 후 쓰시마로 돌아갔지만 특정한 직책에 임명된 사람이나 조선어를 습득하러 온 사람들은 몇 년씩 머물다 돌아가는 예도 흔했다. 이처럼 문화·언어·행동 규범이 다른 이방인이 수백 명 머물며 생활하다 보니 왜관과 그 주변에서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 분쟁이 발생했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불법행위를 작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대표적 불법행위에는 밀무역.상해.살인.도난.난출(闌出:왜관 무단 이탈).교간(交奸:조선여성과 일본남성의 성관계) 등이 있었고, 특히 조선정부가 가장 엄격하게 통제하려 했던 것이 밀무역.난출.교간이었다.


일찍부터 조선정부는 밀무역.난출.교간에 관한 금지 규정을 만들어 왜관을 관리했으나 통제요청과 설득만으로 강제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조선은 17세기 후반부터 쓰시마와 ‘약조(約條)’를 체결했다. 


불법행위와 그것에 대한 처벌을 명문화한 것이다. 그러나 밀무역.난출.교간을 단속하려는 쪽은 조선이고, 쓰시마의 입장은 달라서 ‘3대 금지행위’를 처리하는 조선과 쓰시마의 입장에는 사안 별로 온도 차이가 존재했다.


<조선후기 ‘왜관’의 세계>는 기존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통교제도가 아니라 왜관을 둘러싸고 빈번히 발생했던 ‘불법적인 행위’와 ‘갈등 상황’에 주목했다. 조선과 쓰시마 사이에서 체결된 약조는 어떤 내용이며, 그 약조는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됐을까.


이 책은 조선후기에 발생했던 밀무역.난출.교간 사례를 꼼꼼히 살펴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정부가 만든 각종 제도와 규정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왜관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집필 취지이다. 왜관은 일본인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지만 왜관과 그 주변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 갖가지 ‘은밀한’ 교류와 갈등이 공존했던, 흥미로운 세계임을 독자는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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