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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군산 3.5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두열.고석주.김수남.윌리엄 린튼 선정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03-02 17: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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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22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호남 최초 만세운동인 군산 3·5만세운동의 주역인 이두열.고석주.김수남.윌리엄 린튼 선생을 선정했다.


군산 3.5만세운동은 호남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원만 3만 7,000여 명에 달했고, 사망 및 부상자 등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 아니라 이후 전북 곳곳에서 28회에 걸쳐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된 촉매제 역할을 했다.


3.1운동 소식을 들은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 선생과 구암교회 부속여학교 교사 고석주 선생은 호남지역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고, 만세운동이 이루어진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


우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예수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 교회 신자들, 선생들에게 교육을 받아 민족의식을 가졌던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이끌어냈다.


거사일을 3월 6일 장날로 잡고 학생들과 함께 영명학교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 수천장을 인쇄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하던 만세운동은 거사 직전, 낌새를 눈치챈 일본 경찰의 급습으


그 순간, 이를 본 학생간부 등은 긴급회의를 열어 3월 6일로 예정돼 있던 만세운동을 3월 5일로 앞당겼다. 학생, 예수병원 사무원, 교회 신자들은 함께 남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뿌리며 만세를 외쳤고, 거리에 있던 많은 인파가 이 대열에 합세하여 체포된 교사와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군산경찰서까지 나아갔다. 


위기를 느낀 일본 경찰은 익산에 주둔하던 헌병대까지 동원해 만세운동 참가자들을 탄압했고, 이두열 선생은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죄로 징역 3년을, 고석주 선생도 같은 죄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당시 노동일에 종사하던 김수남 선생은 동료 이남률 등과 함께  일제에 저항키 위해서는 독립운동에 방해가 되는 친일교육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명학교의 3.5만세운동 이후 군산공립보통학교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의 학생 감시와 단속은 더욱 심해졌고, 이런 가운데 3월 14일 학생 70여 명이 동맹하여 연서로 퇴학원을 제출하면서 항거했다.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은 학부형을 소환해 끈질긴 회유와 협박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지켜본 선생은 독립운동에 방해만 되는 친일학교인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불태워 버리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이남률과 3월 23일 밤 11시에 학교에 들어가 건물 동남쪽 출입구에서 불을 붙였고, 맹렬히 타들어가 학교 건물 1개 동을 전소시켰다. 


친일교육의 상징이던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불태워 조국독립의 열망을 표현했던 선생은 방화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모진 옥고를 치렀다.


영명학교에서 교육선교를 시작했던 윌리엄 린튼 선생은 미국으로 돌아가 일제의 잔학한 식민통치와 한국인들의 저항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한국독립의 필요성과 지원을 역설했다.


1912년 22살의 최연소 나이에 선교사로 한국에 온 선생은 교육선교 1년 만에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한글로 성경을 가르치고 영어도 가르쳤다. 1917년 전임 선교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선생은 영명학교 교장으로 임명됐다. 


선생은 군산 3.5만세운동 당시 교사들과 학생들의 준비를 묵인하고 은밀히 지원도 했다. 하지만 일제가 군산에서 발생한 만세운동 참가자를 잔혹하게 탄압하고 고문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후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선생은 애틀랜타에서 남장로교 평신도 대회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애틀랜타 저널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자유를 추구하는지에 대한 애틀랜타인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상황을 기고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국독립의 필요성과 지원을 주장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선생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신흥학교가 폐교하기에 이르렀고, 선생도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군산 3.5만세운동은 영명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계획하고 노동계와 종교계가 조직적으로 전개한 전 민족적, 전 민중적 운동으로 자주독립을 꿈꾸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 저항정신을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두열 선생과 고석주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수남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그리고 윌리엄 린튼 선생에게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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