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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억은 현대중공업 근로자에게"...통상임금 소송 9년 결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12-16 15:16:41
  • 수정 2021-12-16 15: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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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6300억 원대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A 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012년 소송 제기 이후 9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단이다.

 

통상임금이란 쉽게 말해 '회사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줘야 하는 임금'을 뜻한다. 보통 월급으로 대표되면서 지급 주기에 따라 호칭이 다른 시간급이나 일급 또는 주급도 역시 이에 해당한다. 이외에 직무수당처럼 회사가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이와 다르게 근로 실적에 따라 지급 여부와 규모가 결정되는 돈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보통 '보너스'라고 흔히 부르는 상여금 또는 성과급이 대표적이다.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하는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3가지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런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기 상여금 등을 고정적으로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왔다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이다. 통상임금의 규모가 커지면 그에 따라 휴일근로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을 비롯해 회사가 지급해야 할 각종 수당도 함께 올라가게 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를 거부해왔다. 통상임금이 커질수록 근로자는 많은 돈을 받고 회사는 많은 돈을 지급해야 되기 때문에 입장 차는 분명했던 것이다.


통상임금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2013년 이후 100인 이상의 사원을 가진 기업체 가운데 약 200여 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한 걸로 추산된다. 소송은 일반기업 뿐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노동계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부가 패소할 경우 약 10조 원 안팎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갈 걸로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5년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에 따른 기업들의 추가 임금 부담 액수가 38조 원에 이를 걸로 추정하기도 했다.

 

노동계와 재계의 최대 관심사인 통상임금 논란에서 처음으로 기준이 세워진 계기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성격을 3가지로 규정했다.


먼저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지급되는 성격'을 뜻하는 정기성과 '근로 경력 등 일정한 조건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성격'을 의미하는 일률성, 그리고 '성과 등 추가적 조건과 관계 없이 지급이 확정돼 있는 것'을 일컫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기준으로 세웠다. 따라서 각 회사에서 지급하는 상여금 등이 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될 경우 통상임금에 포함되게 됐다.


대법원은 다만 이 결정과 함께 '신의성실의 원칙'을 통상임금 판단의 또 하나의 기준으로 세웠다.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돼 근로자에게 지급할 임금 규모가 커짐으로써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된다면 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 관계의 당사자가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신의와 성실을 가지고 행동함으로써 상대의 신뢰와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민법의 원칙이다. 즉,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면 지급 의무가 없다는 조항을 일종의 단서로 붙여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인상된 통상임금에 따른 수당의 소급분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처지에 놓인 기업들은 앞다퉈 '경영상의 어려움'을 입증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전국 각지 법원에서 진행됐던 통상임금 소송에서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던 것도 이 지점이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측의 논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재판부에 따라 다른 판단이 잇따라 나왔다. 이는 현대중공업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2012년 사측을 상대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중공업은 2개월마다 100%씩의 상여금을 지급하고 연말과 설.추석 명절 등을 더해 1년에 800%의 상여금을 지급해왔다. 노동자들은 이 상여금들이 앞서 대법원이 기준으로 제시한 3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급분을 회사가 직원들에게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저수익성, 원화 강세, 중국 조선소 등 경쟁 회사 출현 등의 이유로 회사의 경영사정이 악화했다"면서도, "이를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한 인정 사유로 삼아 근로자들의 불이익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16일 대법원 앞에서 통상임금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 하는 모습판결 직후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노동자 3만 8천여 명에게 돌아갈 4년 6개월의 통상임금 소급분이 6천300억 원에 달할 걸로 추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명절 상여금을 제외한 700%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임금 소급분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미지급 법정수당의 추가지급을 구하는 것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면서, "회사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므로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회사가 6300억 원의 소급분을 지급할 경우 마주하게 될 경영상 어려움이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6천억 원대 추가임금 지급을 두고 이어져 온 소송전은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근로자들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재판은 그동안 계속돼온 여러 통상임금 관련 소송 중에서도 소급분 지급 기준을 대법원이 판단했다는 점에서 노동계와 산업계의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니다.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일시적인 경영 악화만이 아니라 기업의 계속성이나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이번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통상임금 포함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수당 청구가 진정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에 대해선 보다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단과 일치하는 견해를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하였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근로자의 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9년 만에 내려진 이번 대법원 판단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제기될 다른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걸로 보인다. 기업으로선 경영 악화가 예상되는 근거와 전망을 보다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할 부담이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한 상황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결로 인해 예측지 못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기업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선고 직후 조합원들에게 "대법이 노조 승소 취지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보고하면서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오늘 판결 결과를 환영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당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다"면서,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혀 다음 재판에서 다시 다퉈볼 것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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