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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내건 뜻, 현판을 만든 까닭은?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12-06 19: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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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판' 보고서 발간

태원전 편액

[이승준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일제강점기 자료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이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현판懸板을 조사한 보고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판'을 11월 30일 발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 궁궐과 관청 건물이 훼철되면서 철거된 현판 82건 82점을 포함해, 조선 후기~광복 이후까지 만들어진 현판 104건 110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현판들을 전수조사하고, 현판의 앞‧뒤 고화질 사진을 촬영했고 내용을 모두 번역했다.


이번 보고서에 수록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판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김정희와 완복의 글씨가 있는 신선도 현판

첫째, 궁궐과 관청에 실제 걸려있던 현판이 많다. 태원전泰元殿, 훈련원訓鍊院처럼 건물 명칭을 적은 현판이나 전교傳敎같이 왕명을 새긴 현판이 여럿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경연청經筵廳, 문기수청門旗手廳 서리(胥吏: 관청에 소속되어 행정실무를 맡아보던 최하위 공무원)들의 명단이 기재된 좌목座目 현판 4점이다. 


이는 조선 후기 중간 계층의 동향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이다. 개화기 관청 현판, 일제강점기 박람회장에 걸었던 현판 등 근대사 자료로 가치가 높은 현판도 적지 않다.


둘째, 건물 기둥에 걸었던 현판의 일종인 주련柱聯이 많이 확인된다. 주련은 건물 처마 밑에 거는 편액扁額과는 달리 비바람에 더 노출되고, 건물을 고치거나 허물 때 편액보다 없어지기 쉽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주련은 모두 48점으로, 만든 형식이나 내용으로 보아 대부분 관청이나 궁궐 건물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광사가 쓴 연려실 편액

셋째,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현판들이 있다. 철종대 좌의정이었던 박영원(朴永元, 1791~1854)의 별장인 녹천정綠泉亭의 편액, 기문(記文: 집을 지은 사실을 기념하여 적는 글), 상량문(上樑文: 집의 대들보를 올릴 때 대들보 위에 쓰거나 안에 넣어 집의 안녕을 꾀하는 글) 현판을 비롯해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중국 청나라의 학자 완복(阮福, 1801~1875)의 교류를 보여주는 ‘선인도’ 현판, 청나라 명필의 글씨로 만든 현판들도 여럿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그동안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던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연려실燃藜室’편액 실물이 확인됐다. 이는 이광사 특유의 서체가 잘 드러나는 작품인 동시에 18세기 조선 역사학을 대표하는 명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의 저작배경을 증언하는 사료이다. 보고서에는 현판들의 사진, 자세한 설명과 함께 관내외 연구자들이 쓴 논고 6편이 같이 실렸다.


글자나 그림을 새겨 건물에 다는 널빤지인 현판은 전통 건축의 중요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글씨와 내용 안에 건물을 사용하는 이의 의지와 철학을 담은 종합예술품이었다. 앞으로 많은 국민들이 현판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와 역사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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