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정조가 꿈꾸던 도시, 화성
  • 송성준 기자
  • 등록 2021-09-05 16:21:13
  • 수정 2021-09-05 20:38:16

기사수정
수원화성의 서쪽을 방어하는 화서문

[송성준 기자]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이 성취되는 날이 올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정조 실록에 수록된 내용으로, 수원 화성의 건립에 대해 정조 본인의 언급이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화성을 건축했을까? 화성은 매우 넓기 때문에 화성을 구경하는 동안 답을 얻을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수원화성의 정문, 장안문

수원 화성에 처음 간 사람들은 어디부터 가야할까 고민하게 된다. 일단 입구가 네개라서 혼란스럽다. 필자는 이럴 때마다 높은 사람이 가는 코스로 갔다. 봉건사회에서 높은 사람을 위주로 사회가 운영됐으므로, 그들을 따라 가면 최적의 방법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양에서 정조대왕이 행차했을 때, 그를 맞아줬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으로 가보자. 장안문은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후로 화성을 굳건히 지켜왔지만, 한국전쟁당시 폭격에 의해 반파되었다가 70년대 중반에 재건되었다. 장안문을 보면 화성의 문들과 성벽에서 쉽게 볼수 있는 반원형 구조를 볼 수 있다. 치성이라 불리는 이 추가 성벽은, 쳐들어오는 적군을 성문과 치성에서 둘러싼 상태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어 군사적으로 큰 진보를 가져왔다. 

수원화성의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성벽과 수원시내 전경

장안문 위로 올라가게 되면 왼편으로 성벽이 보이는데, 수원화성은 독특하게도 성벽에 산책로로 조성다. 도시 계획에 따라 끊긴 곳도 있지만, 산책로를 따라 걷게 되면 화성의 전체를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은 약 11만평정도로 매우 큰 규모지만, 중간 중간에 다양한 사적이 있고 길도 잘 정비되어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또한 배롱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등과 맥문동, 수국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놓아 사시사철 구경 갈만 하다. 또한 성곽이 팔달산에 걸쳐 건축되어 올라갈 때는 조금 힘들지만, 수원 구시가지와 화성행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화성의 서문, 화서문이 나온다. 이름을 보면 유추할 수 있듯이 화성의 서쪽에 위치했다고 하여 화서문이라고 명명되었다. 화서문은 다른 문들과 달리 한국전쟁 당시 훼손되지 않아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화서문 좌우로 화서공원과 장안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수원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화서문의 좌측에 위치한 탑은 서북공심돈이라고 불린다. 공심돈은 내부를 비워놓고 높게 쌓은 망루를 의미한다. 정조는 이 서북공심돈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화서문에서 두 가지 선택지로 나뉘게 된다. 성곽을 따라 계속해서 팔달산을 오를 것인지, 화성행궁으로 내려갈 것인지. 초행길인 사람은 이후로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고 거리도 꽤나 되니까 화성행궁으로 내려가길 추천한다.

팔달산에서 내려다본 화성행궁의 모습

화성행궁은 수원의 중심을 화성으로 옮기면서 수원 부사가 기거하는 곳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윤건릉을 화성으로 이장하면서 자신이 기거하기 위한 행궁으로 활용했다. 행궁은 일제시대 때 엄청나게 훼손당했지만, 화성성역의궤에 수원화성의 축성과정과 함께 행궁의 건설과정을 상세히 적어 놨기 때문에 복원이 원활히 진행되었다. 2022년에 500여칸의 복원이 모두 완료될 예정이라고 하니, 곧 완전한 모습의 행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행궁을 나와 동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조그마한 하천을 하나 볼 수 있는데, 화성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이다.

수원천에서 바라본 화홍문

수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화홍문을 마주하게 된다. 화홍문은 광교에서 흘러내려온 수원천이 화성을 관통하여 흐르는데, 화성의 배수로 역할을 하던 곳이다. 수원8경의 한곳으로 유명한데 오색빛의 야간조명이 수문과 누각에 물들어 데이트 장소로도 훌륭하다. 현재는 댐으로 인해 수량이 많지 않아 과거와 같이 물이 가득 찬 모습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비가 온 직후에 가게 된다면 깊게 들어찬 물에 비치는 오색 빛을 관람할 수 있다. 

용연의 건너편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화홍문의 오른쪽에 위치한 방화수류정은 평소에는 정자로 활용됐지만, 전시에는 주변을 감시하는 망루로 사용됐다. 방화수류정 앞에는 용연이라는 이름의 작은 연못이 위치하고 있는데,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최근에는 SNS 핫플레이스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화성을 둘러보면서 정조의 이상향이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된 것 같다. 당파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보며 좀더 강화된 권력을 얻기를 원했고, 그 이상을 화성에 실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자신의 권력만을 늘리기 보다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를 행궁을 통해 펼치려 하였다. 거기에 그의 심미안이 더해져 화성을 완성하게 되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천년 역사향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