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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근역성보관, 신축개관기념 특별전(2) ‘수덕사 대웅전’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4-01-10 13: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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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충남 예산수덕사는 599년에 백제 법왕 원년 지명법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면서 백제공승 혜현법사(570~627)가 법화경을 지송으로하고 삼론을 강의 했다. 665년에는 통일신라 문무왕 5년에 삼층석탑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1308년에는 고려 충렬왕 34년 현재의 대웅전을 중수했고, 1673년에는 조선 현종 14년 수덕사 괘불을 조성했다. 1937년에는 대웅전 해체 수리공사시 ‘묵서명’ 발견으로 대웅전 건립연대가 확인됐다. 1962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사로 승격됐고, 1984년에는 총림 승격으로 덕숭총림 초대방장 혜암스님이 추대됐다.


       ▲ 예산수덕사근역성보관 내부


       ▲ 내포지역 문화형성의 산실, 수덕사


내포란 사전적 의미로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휘어들어간 부분 즉 내륙 깊숙이 바다와 연결되는 물길을 통해 포구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저서 ‘책리지’의 팔도총론에서 내포는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 쯤에 가야산이 있는데,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과 ‘병자’의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 못 미쳤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며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 위에서 언급한 가야산 앞뒤의 열 개 고을은 태안, 서산, 홍주, 덕산, 예산, 신창, 대흥, 청양, 결성, 해미를 칭한 것으로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서산시, 당진시, 예산군, 홍성군, 태안군, 보령시, 아산시, 청양군의 일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지대원년(至大元年)' 묵서가 발견


#예산수덕사 대웅전(국보)


예산수덕사 대웅전은 1937년부터 일제에 의해 실시된 해체보수 중에 부재에서 '지대원년(至大元年)' 묵서가 발견돼 고려충렬왕 34년(1308년)에 건립됐음을 알 수 있어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이다.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의 중간부분이 부풀려진 배흘림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측면에서 보이는 소고리 모양의 우미량(牛尾)은 그 백미로 꼽을 수 있다.


        ▲ 예산수덕사 대웅전(화반)


       ▲ 예산수덕사 대웅전(양갈소로, 네갈소로, 보아지)


       ▲ 예산수덕사 대웅전(네갈소로)


         ▲ 예산수덕사 대웅전(양갈소로)


      ▲ 예산수덕사 대웅전(보아지)


      ▲ 예산수덕사 대웅전(첨차,헛첨차)


       ▲ 예산수덕사 대웅전(첨차)


       ▲ 예산수덕사 대웅전(헛첨차)


#예산 수덕사 목조연화대좌 편(보물, 고려14세기)


예산 수덕사 목조연화대좌 편(보물)은 대체로 길이 20cm, 너비 15cm 내외의 나무를 깍아 입체적인 꽃잎 형태를 만들고 표면에 채색을 했다. 호분을 바르고 검은빛이 도는 색을 덧칠했고, 표면은 금선으로 장식했다. 표면에는 두 가지 형태의 문양을 점토로 만들어 붙였다.


중앙에는 동심원 형태의 꽃 장식과  고사리 모양의 인동문이 결합되어 있고, 가장자리에는 당초문이 가득하다. 이들 문양은 고려 후기 보살상의 목걸이나 영랑에 표현된 장식들과 거의 동일하고 고려시대의 불화에 표현된 연화대좌의 문양과도 동일하다. 이러한 문양의 시대성과 사용된 목재의 분석으로 이 연화대좌는 대웅전이 지어진 14세기 후반에 함께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예산 수덕사 목조연화대좌 편(보물, 고려14세기)


      ▲ 예산 수덕사 목조연화대좌 편(보물, 고려14세기)


      ▲ 예산 수덕사 목조연화대좌 편(보물, 고려14세기)


#연화대좌(부처님이 앉는 자리)


불교조각에서 대좌는 단순한 받침대가 아닌 불상의 장엄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기원은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을 때 보리수 아래에 앉았던 일에서 유래한다.


근역성보관 연화대좌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목조연화대좌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고려불화에 표현된 연화대좌에서도 동일한 문양이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한줄에 약 24개의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연잎이 배열돼 있는데, 이 연잎은 한판의 조각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바탕의 연잎모양의 판 위에 테두리와 중앙의 문양을 별도의 틀로 찍어 만들어서 붙인 후 채색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예산수덕사 괘불, 동국여지승람책, 소조관음보살좌상(조선시대)


#조선시대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권 19 덕산현 불우조에 '덕숭산 내에는 취적루와 불운루의 2개의 누각이 있다.' '재덕숭산 사우취적불운이루'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는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누각이 있음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예산수덕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 복장유물(조선 인조 17년,1639), 후령통(보물)/면포(보물)

 

불복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후령통으로 황초폭자에서 싸여 녹색의 긴 천으로 묶여있었다. 그 안에는 동.남.서.북.중앙을 나타내는 다섯 색의 오보병이 오색샐에 감겨 들어있고 외부에는 다섯방향을 나타내는 도방경이 오색실로 감겨져 고정돼 있었다.


또 예산수덕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 복장유물(조선 인조 17년,1639), 면포(보물)가

겹쳐진 2장의 면포 사이사이에서 실꾸리, 실타래, 다양한 문양의 직물 등이 수습됐다.


#아스카데라


한반도로부터 선진 문화를 수용한 일본아스카시대(6세기 후반)에 호족 스카노 우마코는 백제에서 전래된 불교를 수용, 588년 불교사원인 아스카데라 건립을 착수했고 당시 백제에서는 건축기술자, 노반박사, 기와박사, 화공을 비롯한 사원 건립에 필요한 인력들을 파견했다. 아스카데라 발굴 당시, 탑을 중심으로 북, 동, 서, 방향의 금당이 발견됐고 장신구 등은 가야와 백제고분의 부장품과 유사한 것들도 보인다. 


현재의 아스카데라 내에는 창건 당시 고구려 대흥왕이 황금을 지원해 백제계의 불공에 의해 만들어진 석가여래좌상이 본존으로 모셔져 있다. 아스카데라는 이러한 백제불교와 교류를 기념하기 위해 1986년 백제 불교를 대표하는 수덕사와 자매 결연을 맺어 수덕사에서는 1996년 이를 기념하는 백제 석탑을 기증했고, 유물을 복제해 기증했다. 


       ▲ 아스카데라 출토유물(복제품) (유리옥, 금은연판, 말방울, 도자, 금동고리, 금동금구, 곡옥)


       ▲ 아스카데라 출토유물(복제품) (유리옥, 금은연판, 말방울)


      ▲ 아스카데라 출토유물(복제품) (도자, 금동고리, 금동금구, 곡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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