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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해 하기 18] 야곱이 라반의 양 떼를 돌보고 라헬을 만나다(창세기 29장 1~20절)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3-02-07 11:44:43
  • 수정 2023-02-08 08: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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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e Doré - Jacob Tends Laban's Flocks and Meets Rachel[우성훈 기자] 에서를 피해 광야를 지나던 야곱이 동방 사람의 땅인 하란 인근에 다다른다. 그러다 그곳의 한 우물에서 목자 무리를 발견해 그들이 지나온 곳을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라반이 사는 하란에서 왔다고 하면서 마침 라반의 딸 라헬이 이곳으로 양을 몰고 온다고 하자 야곱은 해가 아직 높아서 가축이 돌아올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수는 없고 목자와 양 떼가 다 모여야 우물 입구에 돌을 치우고 양에게 물을 먹일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그 우물은 양 떼가 모두 모여야 우물 입구에 있는 돌을 치우기로 약속함이 있던 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 하는 동안 라헬이 자신의 아버지 라반의 양 떼를 이끌고 우물로 온다. 그러자 야곱이 목자들이 다 오기도 전에 그 우물의 돌을 옮기고 라반의 양 떼에 물을 먹인다. 


그리고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울면서 라헬에게 자신이 라반의 조카라고 한다. 그러자 라헬이 달려가 아버지 라반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그러자 라반이 달려와 야곱을 영접하고 집으로 인도한다. 그곳에서 야곱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의 집에서 한 달간 거주하다가 라반은 야곱에게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대신 그 품삯을 무엇으로 할지 정하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자 야곱은 라헬을 부인으로 얻는 대신 외삼촌의 집에서 일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라반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것보다 야곱에게 라헬을 주는 것이 나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일손 노릇을 하는데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처럼 일한다. 야곱이 라헬을 찾아 목숨을 건지고 라헬로 인해 7년의 일손 생활을 쉬이 보낸다.


 세상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첫째는 우리가 마더 테레사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면서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람들, 우리가 소위 영웅이나 위인이라고 부르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 옳은 일이고 또 가치가 있는 일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나 가족, 친구나 동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간다. 야곱 또한 마찬가지였다. 야곱은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평생을 살았고 야곱이 라헬을 찾아 우물의 돌을 치워 라헬의 양 떼를 마시게 함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해 고된 노동의 7년을 며칠처럼 쉽게 보냈던 것도 결국 그가 라반을 찾아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기쁨과 그 노동의 대가로 라헬을 얻어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에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을 위해 열심히 양 떼를 돌본 것도, 또 우물의 돌을 치워 라헬에게 도움을 준 이타적인 행동을 한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라헬과 그녀의 아버지 라반의 가정은 야곱의 이 자신만을 위한 행동들로 인해 복을 받는다. 라헬은 목자 떼가 다 모여야 물을 먹일 수 있음에도 야곱으로 인해 자신의 양 떼에 가장 먼저 물을 먹이는 도움을 얻는다. 결정적으로 라반은 야곱의 양 떼 돌봄과 그 집의 일을 봉사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복을 얻어 성실히 일함으로써 라반의 재산이었던 양 떼를 야곱과 반으로 나눠 가져도 차고 넘칠 만큼 몇 배로 불어나는 복을 얻게 된다. 비록 야곱이 우물의 정함을 깨고 라헬의 양 떼에 물을 먹인 것도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 목숨을 건진 기쁨에 저 스스로 그런 것이고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열심히 일한 것도 그녀의 딸 라헬을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라반의 집은 그런 야곱의 행동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 야곱은 비록 이전에 자신의 고향 아버지 이삭의 장막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선을 다해 행동한 것뿐이지만 형에게 살해당할 뻔해 거지꼴로 쫓겨난 아버지의 집과 달리 먼 땅 타국의 외삼촌 라반의 장막에선 풍요와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변화한다. 어째서 야곱의 이 똑같은 동기로 인해 이뤄진 행동이 이렇게 180도 달라진 결과를 불러일으켰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그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붙잡는 것을 바꾸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야곱이 붙잡는 것, 야곱이 의지하는 것을 바꾸셨다. 야곱은 이전에는 꾀와 술수를 더 의지하는 자였다. 이전에는 에서가 사냥에 돌아와 배가 고픈 것을 노리고 장자권의 축복을 팥죽으로 사려고도 하면서 형 에서가 사냥에 간 틈을 타 에서처럼 분장해 형의 축복을 가로챈다. 그리고 이러한 야곱의 성향은 사그라지지 않아 후에 에서와 재회할 때도 꾀를 써서 형의 공격에서 피해를 줄이려 시도한다. 그러나 적어도 야곱은 이전에 모든 것을 꾀와 술수로 의지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 하나님이 이끄셔서 만나게 된 사람, 그의 혈육에게서 살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성실함과 인내함이라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주변 환경에 복이 되는 자질을 붙잡게 해 결국 그가 속한 라반의 가정을 풍요롭게 한다. 물론 야곱의 그 모든 손이 닿는 것과 행보에 이처럼 풍요와 복이 넘쳐흐르는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의 손이 닿는 것에 능력과 복을 부어주셨기 때문이지만 결국 그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던 것은 야곱이 정당하게 노력해 원하는 것을 얻는 성실함과 타인을 사랑함에 참고 인내하는 것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또 야곱이 이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의 길을 이끌고 또 그에게 라헬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붙잡도록 내려준 사닥다리가 야곱과 그의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 자신만을 위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이 변하지 않을 것을 아셨음에도 야곱에게 최선을 다하신다. 이는 야곱이 다른 사람과 이웃들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믿기기 때문이셨다. 야곱에게 있어 타인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아니었다. 따라서 야곱은 그의 가족마저도 속이고 배신해서라도 자기의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야곱은 결국 사람에게서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우물에서 라헬을 만나 그녀의 아버지인 라반을 만나 도망자의 신세에서 벗어나 목숨을 건진다. 야곱은 그 순간 자신의 살릴 생명이 자신의 친척 자신의 핏줄 안에 자신의 목숨을 구원할 생명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야곱은 타인인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쏜살같이 지나갈 정도로 느낄 정도로 어려움 없이 일한 야곱은 타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 기쁨임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믿었던 모습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 속에서 자신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것. 비록 자신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은 변할 수 없더라도 자신의 이웃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얻는 것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이 그러하신 것처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이끌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피해를 주던 야곱을 변화시킨다. 자신의 살길을 찾은 기쁨에 우물의 정함을 깨고 돌을 옮겨 라헬에게 도움을 주었던 야곱처럼 우리를 기뻐함에 옛 약속을 깨고 예수를 준 하나님의 마음이 야곱을 축복의 존재가 되도록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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