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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75] 이대임을 설향하기 위한 포항 '학삼서원(鶴三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1-28 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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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에 공을 세운 임란의사 죽계 이대임을 추모해 설향키 위해 세웠다.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대임(李大任)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1791년(정조 15)에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던 중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고, 그 뒤 1907년에 복원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1,500평 등이 있다.



이대임(李大任, 1574~ ?)은 자(字)는 사중(士重), 호(號)는 죽계(竹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국추(國樞)의 아들로 중봉(重峰) 조헌(趙憲)을 사숙(私淑)했다.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장기전투 및 경주전투 등에 참가했고, 세상을 떠난 후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증직됐다.


학삼서원은 강당의 후면으로 사당이 배치돼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경충묘(景忠廟)인 사당, 경의당(景義堂)인 강당, 교육재(敎育齋)인 동재, 학습재(學習齋)인 서재, 문간채 등 총 5동의 건물로 구성됐다. 사당인 경충묘에는 이대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강당인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돼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사당인 경충묘(景忠廟)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에 초익공 양식을 취하고 있다. 겹처마에 풍판을 달았고, 문은 쌍여닫이문이다. 잘 치석된 원형초석에 원기둥을 세웠고, 기단은 자연석을 쌓았다.


강당인 경의당(景義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5량가 가구구조이다. 초익공 양식이며,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건물의 양끝에 네모서리 기둥에 장주초석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고, 기단의 상부를 장대석으로 마감했다. 배치형태는 양끝에 방을 1개씩 뒀고, 가운데 2칸은 마루를 설치했다. 또한 정면과 측면까지 툇마루를 뒀다.

 

동재인 교육재(敎育齋)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에 처마는 홑처마이다. 3량가 가구구조이고, 민도리 양식에 굴도리를 사용했다. 전면에 원기둥을 사용했고, 문은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정면에 툇마루를 설치했다.

 


서재인 학습재(學習齋)는 동재와 동일한 양식이나 동재보다 1칸이 더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에 처마는 홑처마이다. 3량가 가구구조이고 굴도리 양식에 납도리를 사용했다. 전면에 각기둥을 사용했고, 맨 남측 1칸을 제외한 3칸의 문은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정면에 툇마루를 설치했다.

 

현판에 ‘조도문(造道門)’이라고 쓰여 있는 문간채는 솟을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3량가 가구구조이다. 초익공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맞배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용마루나 내림마루에 망와를 사용해 마감했고, 전면에 원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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