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안중근 의사 배향하고 있는 '만수사-해동사'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1-22 17:22:17
  • 수정 2024-02-12 21:24:02

기사수정



[이승준 기자] 만수사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에 있는 사당으로,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고려시대 안향(安珦)을 배향키 위해 건립한 사당으로, 안씨일문이 안향을 주벽으로 해 선조들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46년 착공해 1951년 준공했다.




이어 조선시대 향학과 덕행에 명망이 있었던 6공신 중 안원형(安元衡).안면(安勉).안정생(安挺生)을 제향해오다가, 1963년 주세붕(朱世鵬).안중묵(安重默)을 추배했다. 그후 1997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을 배향한 해동사(海東祠)를 건립했는데, 이곳에는 대통령 이승만이 ‘해동명월’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 규모는 신실인 만수사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구(架構)는 1고주 5량가이다. 강당인 여경재는 1925년 건립됐는데, 전후로 퇴를 둔 1자형 5칸집으로 구조는 7량가이다. 내삼문인 경모문은 3칸, 외삼문 3칸, 고직사 5칸 등이 있다. 만수사 밖에는 해동사 1동, 기타 부속건물 2동이 있다.


해동사(海東祠)는 안중근의사(1879.9.2~1910.3.26)를 배향하는 사우로 만수사(萬壽祠) 경내에 있다.




안중근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으로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을 격살한 의거의 주인공으로 대한 남아의 기개와 민족정신을 전 세계에 떨쳤던 인물이다. 




여섯차례의 재판을 거쳐 1910년 2월 14일 사형언도를 받고 3월 26일 뤼순(旅順) 감옥에서 형집행으로 순국을 한다. 


특히, 사형언도 뒤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논책으로 미완성이지만 죽음을 앞둔 시기의 저작물로서 현재까지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해동사는 광복 전후부터 건립이 논의되다가 1955년에 장흥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건립하게 됐다. 유림대표로 죽산안씨 의산 안홍천(義山 安洪天, 1895~1994)이 주도를 했다./사진-윤정숙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