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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69] 손린 선생을 모신 '봉산서원(鳳山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1-21 10: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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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봉산서원(鳳山書院)은 문탄 손린(聞灘 孫遴)선생을 모셔둔 서원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뒤 1735년(을묘 영조 11년에 도내의 유생들이 선생의 뜻을 기리었는데, 당시 방백이던 김재증(金在曾)이 영문(營門)에 쓰기를 “선생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절개는 밝기가 해와 별 같으며, 바람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니 누구라도 우러르지 않으리오”라고 했다. 


이후 1766년(영조42년)에 수성 옛 터에 사우(祠宇)를 건립했고, 1799년(정조23년)에 금봉산(金鳳山)아래에 사우를 이건했다. 이 후 1803년(순조3년) 2월에 봉암사(鳳巖祠)에 위판을 봉안하고 1844년(헌종10년)에 서원으로 높여 부르고 이름도 ‘봉산서원’이라 하였다. 


이 후 1864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7년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 칭하고, 1996년 후손들과 유림에서 지행당 등 수성구 상동의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선생의 성(姓)은 손씨(孫氏)이며 관향(貫鄕)은 일직(一直)이다. 휘(諱)는 린(遴)이며 고려 말엽 육조 원신(六朝元臣)의 정평(靖平) 손홍량(孫洪亮)의 구대손(九代孫)이다.



선생은 명종(明宗) 이십이년(二十二年) 정묘(丁卯 1567)에 대구 수성에서 출생(出生)하여 선조(宣祖) 삽십구년(三十九年) 병오(丙午1606)에 대과(大科) 급제(及第)하고 정미(丁未 1607)에 성균관(成均館) 학유(學諭)가 되고 팔월(八月)에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 신해(辛亥 1607) 정월(正月)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 겸 춘추관(春秋館) 기사(記事), 인조(仁祖) 반정후(反正後) 단성(丹城)현감(縣監) 및 정묘란(丁卯亂 1627)에 의병장(義兵將) 피임(被任)하여 활약(活躍)한 뒤 경주(慶州),안동(安東),상주(尙州) 교수(敎授)로 부임(赴任)하였다.


장자(長子) 처각(處恪)은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이고 차자(次子)에 처신(處愼)은 충청도사(忠淸都事)이고 장손(長孫) 단(湍)은 고성현령(固城縣令) 등이다.

    

봉산서원은 사당건물인 봉암사(鳳巖祠)와 강당인 지행당(砥行堂), 재실인 송독재(誦讀齋) 그리고 입구에 외삼문인 지행문(砥行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 왼편으로는 문탄선생유허비(聞灘先生遺墟碑)가 있다. 가장(家藏)으로 우복 정경세 선생이 발문을 지은 사호도(四皓圖)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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