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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영남루'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2-30 03:17:50
  • 수정 2023-09-03 03: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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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남원에 광한루, 삼척에 죽서루가 있다면 밀양에는 영남루(嶺南樓)가 있다. 


영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영남루가 있는 이 터에는 원래 신라시대에 창건된 영남사(嶺南寺)가 들어서 있었다. 고려에 들어와 영남사는 종각인 금벽루만 남은 채 스러진 절이 됐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김주(金湊)라는 군수가 이 절터에 영남루라는 이름의 새 누각을 지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영남루가 이때 지어진 건물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넓혀 짓고 화재를 만나 훼손되기를 반복하다가 헌종 10년(1844)에 다시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영남루는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건물로, 관원들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층 누각 팔작지붕집으로,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규모가 매우 커보이는데, 게다가 양쪽 옆으로 날개처럼 두 건물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위치 또한 밀양강을 발아래 둔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강 남쪽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모습이나 영남루에서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도심 경치가 매우 시원하다. 


영남루에 올라 강을 내다보고 섰을 때 왼쪽에 있는 건물이 능파당(陵波堂), 오른쪽에 있는 것이 침류각(枕流閣)이다.


현재 영남루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능파당으로 해서 본루로 올라가 경치를 즐기도록 돼 있다. 침류각 쪽에서의 출입은 본루와 연결된 월랑(月廊)을 이용하도록 돼 있으나 계단의 파손이 심해서 통제되고 있다.



능파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익공식 팔작지붕집으로 본루와 마찬가지로 중층을 이루고 있고, 2층 두 칸은 온돌방이고 오른쪽 한 칸은 마루로 비워 마루를 통해 본루로 통하도록 돼 있다.


본루는 누마루 주위로 계자난간을 둘러 사방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누각에서 강바람을 맞으면서 바라보는 자연경관도 아름답지만, 넓은 마루에 편히 앉아 내부 구조를 요모조모 살피는 재미도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본루 2층의 기둥 위에는 각기 하나씩의 포를 얹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도깨비 얼굴 모양의 화반만을 뒀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나 합각마루 밑은 우물천장을 두어 서까래를 가렸다. 바깥기둥(평주)과 내부의 높은기둥(고주) 사이에는 휘어진 퇴보[退樑]를 걸었고, 내부 높은기둥 사이의 뜬창방과 그 위에 오는 도리 사이에 화반을 얹어 바깥기둥 창방에 놓인 화반과 시각적으로 어울리게 배려한 것이다.



대들보 위로 걸쳐 지른 버팀보[衝樑]의 용머리 조각 등이 단조롭고 정적인 내부를 화려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단장시킨다.


본루 정면에는 구한말의 명필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洲)가 쓴 ‘嶺南樓’라는 편액이 ‘江左雄府’(강좌웅부)와 ‘嶠南名樓’(교남명루)라는 편액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내부에도 여러 명필가들이 남긴 편액이 많은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7세의 이현석(李玄石)’이 썼다는 ‘嶺南樓’와 ‘10세의 이증석(李憎石)’이 썼다는 ‘嶺南第一樓’(영남제일루)가 눈에 띈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이후 각각 당대를 대표하는 유명 문인들이 남긴 기문(記文)과 시 등이 많이 있다. 조선 초기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도 영남루에 올라 ‘영남루십경’을 노래한 바 있고며, 영남루의 가을 달빛은 밀양팔경2의 하나로 손꼽혔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개방돼 있어 사방을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다. ‘嶺南第一樓’ 편액은 10세의 이증석이 썼다고 한다.


본루와 월랑으로 연결돼있는 침류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집이다. 본루와 침류각의 높낮이를 층층계단으로 연결하고 그 위에 지붕을 연속으로 얹은 것이 매우 율동적이다. 


본루인 영남루와 이어진 월랑을 층층계단으로 연결하고 지붕을 얹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율동적이다. 추녀 끝 망와의 도깨비 장식 또한 재미있다.


영남루는 예로부터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꼽혀오고 있고,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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