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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46] 선조의 조모인 창빈안씨신도비 부 묘소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2-29 17:27:34
  • 수정 2024-04-10 10: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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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 왕의 생모나 왕세자.세자빈.왕세손의 무덤은 원, 대군이나 군.공주.옹주 및 빈.귀인.숙의 등 후궁의 무덤을 묘라고 한다.


원은 왕릉의 형식을 의하면 묘는 사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원의 전체적인 규모는 왕릉에 비해 작으나 묘역 안에 홍살문.어교.정자각.수복방.비각을 세우고 있고 정자각 뒤에는 높은 분릉이 위치해 있다.



묘는 제각이나 사당 뒤 높은 분릉 위애 봉분을 두고 있다. 봉분 앞에는 묘갈.혼유석을 놓고 한 단 아래에는 장명등을 세우고 있고 좌우 양쪽에 문인석을 2-4구 세우고 있다. 특히 묘에서는 예외가 있긴 하나 능이나 원에서 볼 수 있는 석수가 없으며 대군묘나 공주묘 등에서는 망주석아 세워지지 않고 지위에 따라 상설이 간략화되고 있다.


숭인원.영휘원과 동작구의 창빈안씨 신도비 부 묘소.지덕사 부 묘소 등 현존하는 원묘는 그 보존상태가 좋다.




그리고 사묘로는 동작구 노량진동의 사육신묘를 비롯해 관악구 신림동의 강홍립묘 등 조선시대의 것으로 수기가 있고, 대한제국말 이래의 사묘로서 동작구 국립묘지에 독립유공자들의 것으로 100여묘가 있다.


한편, 신도비는 옛날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무덤이 있는 근처 큰길에 새우던 석비로, 이 석비는 그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돼 왔다.



동작구 동작동 44-7 국립묘지 경내에 있는 조선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조모인 창빈안씨의 묘비와 묘소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됐다. 


국립묘지 산기슭 중턱에 자리한 이 묘소는 둥근 담이 둘러진 봉분 앞에 묘갈.혼유석.석등이 각각 1기씩과 석인 2구가 갖춰져 있어서 조선왕실 후궁의 묘 규례를 알아볼 수 있다. 이곳 원묘는 향용 동작릉이라 불리웠고 후궁 원묘에서는 보기 드문 신도비를 갖추고 있다. 


이 신도비의 건립연대는 비문말미에 ‘숭정기원후 오십육년계해십이월 일건’이라 돼 있는 것으로 보아 숙종 9년(1683)에 이룩됐음을 알 수 있다.



비신은 화강암으로 돼 있고, 총 높이 312cm, 신고 204m, 신폭, 63.5cm, 대고 38cm, 개고 70cm, 두께 63.5cm로, 그 당시의 몇몇 비에서만 볼 수 있는 정사각형을 하고 있다. 방형대석은 높이가 38cm로 지반석과 좌대석이 한돌과 돼 있어 장중하고, 옥개혈 개석은 유난히 크나 꼭대기의 연봉에만 약간애약 산의 조갈이 있을 뿐 다른 새김이 없어 간결하다.


비의 전액은 비신 상단을 좌측으로 돌아가면서 자경 약 18-19cm의 횡서로 ‘창빈안씨신도비명’이라 돼 있고 요덕대부 동평군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항의 솜씨이다. 비문은 숙종때 예조판서와 한성판윤을 지낸 신정이 지었고, 글씨는 한성판윤을 여섯 번이나 역임하고 지돈녕부사에 이르러 기로소에 입소한 이정영이 썼다./사진-빅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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