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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24] 극단 민중, 정진수 연출 '꿀맛'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2-12-27 19:16:37
  • 수정 2023-02-15 08: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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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극단 민중의 샐라 달레니 작, 정진수 연출의 꿀맛을 관람했다.


천재여류작가 셀라 딜레니의 꿀맛(A TASTE OF HONEY) - YouTube


정진수(1944~) 연출가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1995년부터 3년 동안 한국연극협회 제18대 이사장을 지냈다. 1999년 이후 성균관대 예술학부 연기예술학과 주임교수를 역임했다. 영문학자로서 영미희곡 번역도 많이 하고 1994년부터 현재까지 극단 민중 대표를 지내며 연극 ‘꿀맛’,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30캐럿의 여인’ 외 8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연극행정가로도 불린다. 한 연극인은 “그가 대학로의 그림을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이라고 평가했다. 1991년 5000원 할인된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랑티켓’ 제도를 추진한 것도 그였다. 연극협회 이사장이 돼서는 문화게시판을 도입해 대학로 볼썽사나운 벽보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1999년 과천세계마당극제 등 여러 연극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공로도 인정받고 있다. 2019년에는 ‘연극인의 삶’이란 저서를 출판했다.


영국의 여성극작가 셀라 딜레니(Shelagh Delaney 1939~)의 『꿀맛』(A Taste of Honey, 1958)은 노동자 계층의 암울한 일상과 실생활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이를 통해 영국 사회 전체의 모순을 드러나게 하는 사회성 짙은 함의에도 불구하고 1956년 존 오스본(John Osborne)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초연 신화에 가려 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경향이 있어왔다. 『꿀맛』은 오스본의 극처럼 초라한 삶을 배경으로 전개되지만 분노한 남성 대신 소외계층의 여성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종래의 방식과는 다른 무대재현 방식을 보였다. 특히 여성과 양육의 문제, 모성애의 상실과 회복의 가능성, 미혼모, 동성애, 흑백 인종간의 일시적 사랑과 같은 사회적 금기들과 쟁점들을 동일선상에서 부각시킨 점에서는 상당히 선도적인 극작품이다. 딜레이니는 1950년대 후반 여성극작가의 부재가 눈에 띄던 시기에 남성 지배적인 영국 무대에서 드물었던 여성극작가의 목소리를 낸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꿀맛』은 이후 여성 극작가들의 드라마를 특징짓는 극적 소재들을 어느 정도 그려주었다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크다.



딜레니의 『꿀맛』의 초연 공연 텍스트는 하층계급, 여성과 동성애 등장인물들의 재현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으로 여겨져 왔다. 흑인 선원과의 짧은 만남이후 예기치 않게 임신하게 된 십대 소녀인 주인공 조(Jo)는 그녀의 선택에 대해 비난받지 않는다. 그녀는 이 위기를 견뎌낸다. 그녀를 돌보는 미술학도인 제프(Geoff)는 동성애자이다. 그러나 그는 희생자도 악영향으로 비난받지도 않는다. 딜레이니는 극에 동성애자 등장인물인 제프를 포함하기는 했지만 그는 동성애자로서는 매우 낯선 인물이며 전복적인 수행성, 퀴어성을 박탈당한 동성애자만이 당시 무대 위에 허용되었음을 이 극 역시 보여준다. 이 극은 당시의 금기를 깨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연극적 인습도 따르지 않고 있다. 또한 전후 달라진 가정의 위상에 대한 주제는 이 극에서 젠더화된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꿀맛』이 부수고 있는 또 하나의 연극적 금기는 이 극이 가정을 배경으로 하지만 극의 중심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흥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 인물들은 여성 이야기의 필요에 따라서 오고 가며, 우리도 남성의 감정이나 딜레마를 따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50년대 후반 극작품들을 논함에 있어 『꿀맛』이 내포한 정치성과 재현을 살펴보면 오히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보다 더 급진적이다. 일상적인 어투의 대사들로 이어지는 이 극은 무책임하고 방탕한 엄마 헬렌(Helen)과 조로 대표되는 하층계급 모녀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가난, 성적 방종, 인종간의 관계, 한 부모 가정, 인종차별, 동성애, 모성의 부족 등의 이슈들을 미묘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스본이 더 급진적인 극작가로 여겨지는 경향은 남성이 지배하는 연극평론활동 및 특정 장소를 홍보하거나 여성들이 쓴 극을 주변화 시키는 평론가들의 편견이 계속되고 있음을 일면 시사한다. 시대가 변했지만 『꿀맛』은 가난 때문에 의욕을 박탈당하고 타인의 변덕스러움에 공격받기 쉽고 취약해진 실제 사람들에 대한 열정적인 진술로 남아있다. 요컨대 희극적 생생함을 겸비한 딜레이니의 벤치마크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인간 정신의 생존 능력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며 60여년이 지나서도 그 관련성과 신랄함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 『꿀맛』의 연극과 각색 영화에서 다룬 1950년대 영국을 비추는 주제들과 이슈들은 여전히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현대 영국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문제들이라는 측면에서 이 극의 현대적 공명 또한 찾게 된다. 계층 차이는 줄었지만 인종차별, 균열 가정, 십대 임신, 미혼모, 부모의 자녀양육 태만, 알코올중독,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 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대는 정사각의 한자 높이의 무대를 깔고 상수쪽 끝에 계단도 만들었다. 그 옆은 외부로 통하는 길이다. 벽 정면에 창이 있고 그 앞에 침대가 세로로 놓였다. 하수쪽 벽 앞에 목욕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고 통로 앞 벽면에 책과 장식품 그리고 술병이 놓인장과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상수쪽 벽에는 그림 액자가 결려있고, 그 앞에 안락의자가 있고, 정면 창 상수쪽 그림 앞에 화장대와 거울, 의자가 배치되고 기둥은 완전하지 않고 중간이 꺾인 형태로 상수쪽 무대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다.


극단 민중극장 59주년 공연 '꿀맛' 개최...영국의 고전 선보인다 < 공연 < 문화 < 기사본문 - 문화뉴스</p>


엄마 헬렌과 딸 죠세핀은 맨체스터의 빈민가의 낡은 집으로 이사를 온다. 뭇 사내의 품을 전전하면서 불안정한 삶을 꾸려가는 헬렌은 딸의죠세핀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헬렌은 최근에 사귄 중년의 남자친구 피터와 결혼할 결심을 하고있다, 딸 죠세핀은 자신도 흑인병사와 사귀며 반지를 선물로 받고 손가락보다 큰 반지를 줄에 매달아 목에 걸어 엄마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춘다.그러나 결국 반지를 들키게 되고,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딸과 다툼이 싫다는 핑계로 피터와 결혼을 하려고 집을 떠나 버리자, 혼자 남은 죠세핀은 반지를 준 흑인 해군병사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임신을 한다. 그러나 죠세핀은 무슨 까닭에서인지 흑인병사와 헤어진다. 그리고 새 남자친구 제프리와 사귀고 그와 동거까지 한다. 새로운 남자친구 제프리는 마치 엄마처럼 임신을 해 배가 불룩한 조세핀을 돌봐준다. 출산일이 가까워지자 남자친구 제프리는 죠세핀에게 알리지 않고 그녀의 엄마 헬렌에게 연락을 한다. 마침 또 다시 결혼에 실폐한 헬렌은 결국 딸하고 살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함께 살면서 지내는 죠세핀은 엄마를 썩 반가워하지 않는다. 모녀간에 티격 태격하는 장면이 다시 펼쳐지면서 헬렌은 제프리를 쫓아낸다. 그리고 헬렌 역시 집을 떠나버린다. 결국 홀로 남은 죠세핀에게 조명이 집중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난다.



필자는 꿀맛의 한국초연을 1964년 드라마센터에서 극단 회로무대의 오태석 연출로 공연된 것을 관람했다. 무대 좌우의 객석으로부터 올라가는 높은 계단 뿐 아니라 극장 아래로 내려가는 객석 앞 지하 통로를 사용해 배우들의 동선을 연출했고, 배우들의 열연은 물론 특히 이영후(1940~ 연세대 출신탤런트, 김구 역으로 연기대상 수상)의 호연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 민중극장에서 헬렌 역을 맡은 윤석화의 호연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현건이 피터, 박리디아가 헬렌, 양동근이 흑인 병사, 김아영이 죠세핀, 최근혁이 제프리로 출연해 제대로 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특히 박리디아의 호연은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창출시키는 열연으로 동료 출연자들과 호연과 함께, 극단 민중극장의 샐라 달레니 작, 정진수 연출의 꿀맛을 대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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