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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43 ] 이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한 장흥 '예양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2-02 06:44:15
  • 수정 2022-12-02 06: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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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예양서원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후기 이색을 추모키 위해 창건했다. 


1620년(광해군 1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1668년에 신잠(申潛)과 김광원(金光遠)을 추가 배향하고 1681년에 남효온(南孝溫), 1683년에 유호인(劉好仁)을 추가 배향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사우의 중앙에는 이색의 위패가 봉안돼 있고 좌측에는 남효온.신잠, 우측에는 김광원.유호인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돼 있고, 원내의 여러 행사와 회합장소로 사용된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됐으나 1970년 지방유림에 의해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4칸의 강당, 4칸의 제숙사(祭宿舍) 등이 있다.


제숙사는 향례 때 제관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이 서원에서는 매년 9월 9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3,300여 평과 임야 5정보 등이 있다.




고려말의 문신.학자이자 서예가로,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부친은 고려 말의 학자인 찬성사 이곡(李穀)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14세에 진사가 됐다. 1348년 21세에 원나라에 유학해 국자감의 생원으로 성리학을 공부했다. 1351년 부친상으로 귀국했고, 이듬해 공민왕이 즉위하자 전제 개혁과 교육 진흥 등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1353년 향시(鄕試)에 1등으로 합격했다. 다음 해 원나라 북경에서 치른 회시(會試)와 전시(殿試)에서도 합격했다. 27세 때 귀국해 이부시랑 겸 병부낭중 등을 거쳤고, 30세에 국자감좨주가 됐다. 이후 춘추관.예문관과 밀직사에서 관직의 대부분을 보냈고, 예문관 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관 대사성 등을 거쳐 판문하부사를 지냈다.




1389년 이성계 일파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나 유배됐다가 1392년 조선 개국 후 고향 한주로 돌아갔고, 1395년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졌으나 거부했다. 고려 말의 대유학자로 권근(權近).변계량(卞季良) 등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며, 글씨를 잘 썼다. 이색의 글씨는 힘차고 골기가 충만해 그의 성품이 강직했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모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1380년부터 신륵사(神勒寺)에서 대장경 인출(印出)작업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목은집(牧隱集)'이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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