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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순의 소소한 이야기 153] 김유정 문학관을 다녀와서
  • 손유순 자문위원
  • 등록 2022-12-01 17:30:25
  • 수정 2022-12-25 23: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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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에서 한국문학생활 회원들과 함께 모여서 경춘선을 타고 김유정 문학관역에서 내렸다. 구름 한 점, 티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우리를 더 설레게 했다. 여행하기 좋은 날, 춘천 김유정 시인 문학관도 둘러보고 곱게 물든 단풍과 은행나무의 노란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마음껏 즐겼다. 


김유정문학관 주위에는 관광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우리 일행은 도착하여 회원들의 장기자랑으로 하모니카 연주와 시낭송 후 문학박사 최운선 회장님께서 김유정 문학 강의를 재미있게 해주셨다.  


김유정은 이상보다 두 살 위인데 친하게 지냈으며 둘 다 치질과 폐결핵 환자였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동반 자살을 하려고 준비까지 했는데, 김유정은 광주 누나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20일 후 이상은 일본 동경에서 사망했으며 신체적으로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김유정 소설은 30편정도 이지만 김유정에 대한 문학연구논문은 360여 편 정도로 활발했다. 윤동주 연구 논문은 1000여 편이나 나왔는데, 김유정 대표작품 ‘봄봄, 금 따는 콩밭, 소낙비’ 등이다.


김유정의 아버지는 엄청 부자였고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실레마을의 재산을 다 팔아서 서울 효자동과 문리동이 부자동네였는데 그곳에 100칸짜리 집을 마련했다. 아버지는 8살 때, 엄마는 5살 때 돌아가고 누나는 5명 형은 1명인데 많은 재산은 나이 차이가 나는 형이 주색잡기로 다 팔아먹어서 휘문고졸업 후 연희전문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중퇴 하게 되었다. 윤동주도 연희전문 나왔다. 연희전문은 그 당시에 부자나 공부를 잘해야 갈수 있었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연희전문 다닐 때 박녹주라는 기생이 대 여섯 살 연상의 여인이 비누로 세수하고 수건으로 닦고 나오는 모습에 첫눈에 반하여 편지를 매일 쓰는데 박녹주도 생판 모르는 자에게 매일 편지가 오니 지겨워서 박녹주가 김유정을 불러서 만나자고 하였다. 만나자 마자 김유정이 뜬금없이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라고 하니 박녹주는 “나는 남편이 있는 몸이다. 난 결혼 할 수가 없다”라고 거절하고 김유정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모두 박박 찢어버리는데도 김유정은 쉬지 않고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래도 끝가지 박녹주는 넘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이차이도 있고 결혼한 사람이고 기생이지만 기둥서방이 있어서 김유정을 얕잡아 본 것이다. 박녹주가 거절하자 김유정이가 험한 편지도 쓰게 된다.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 하는 거요. 보료위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하는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나요.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요. 당신이 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그런데 또 협박 편지를 자꾸 보내도 마음이 돌아서지 않으니 


“엊저녁에는 네가 천양원으로 간 것을 보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만일 그때 너를 만났으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꼭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혈서로 쓴 편지를 박녹주가 받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밖에 나갈 때는 인력거에 휘장을 치고 남바위까지 눌러쓰고 변장을 하고 김유정이 못 알아보게 변장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다 서울 장안에 김유정과 박녹주의 연분설이 소문나는데 김유정이 혈서를 써도 안 되고 애원과 협박을 해도 효과가 없으니 그 때부터 술과 여자에 자기 형처럼 빠지게 되나 형이 탕진을 해서 재산이 없어서 다니던 연희전문도 중퇴하고 혜화동 근처 허름한 방에서 지내게 된다.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게 되어 태어난 실레마을로 되돌아가서 남겨진 재산으로 요양에만 매달리지 않고 야학당을 지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870년대 러시아에서 청년 귀족과 학생들이 농민을 대상으로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일으킨 계몽운동으로 ‘브나로드운동’이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졌는데, 1930년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농촌으로 가자.’라고 농촌계몽운동을 하게 된다. 김유정도 실레마을에서 야학과 농촌계몽운동도 하게 된다. 심훈의 상록수도 농촌계몽운동의 작품이다.


김유정은 삶속에서 병마에 시달리고 하층민들과 같이 생활하며 그런 내용으로 글을 쓰게 된다. 첫 작품이 ‘금 따는 콩밭’ 밭을 파면 금이 나온다고 사기를 친 내용인데 그 시절엔 농촌이 살기가 어려웠다. 몸이 많이 아파서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비렁뱅이 생활을 하면서 작품의 내용이 궁핍한 사람들의 이야기 토속어 어느 집안의 형제간의 재산 때문에 싸우는 다툼이 소설의 내용들이었다.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활의 체험했던 이런 삶의 모습들이 녹아들어 있다. 김유정의 글 쓰는 문학 자체는 도피처였다. 왜냐하면 형이 재산을 탕진하고 형이 형수를 패고 조카들을 못살게 굴고 형이 처와 자식들을 죽이고 서울로 올라가 재산 탕진하면서 가족들에게 못된 짓을 했다. 예전에 그런 집이 한 두 집이 아니었다. 

이상을 만나게 된 동기는 구인회라는 문학단체에서 친하게 되었다.


김유정의 문학은 우리 삶의 제일 밑바닥인데 농촌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것을 풍자와 아이러니 식 법과 해학으로 표현한 김유정의 어떤 삶에 인생 도피처를 각색 시킨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내용들이 많다. 김유정의 감자 작품도 재미있다. 


글을 쓸 때는 내 나름대로 기교의식도 좋지만 목표의식도 있어야 한다. 톨스토이나 섹스피어처럼 나름대로 전달하는 메시지를 독자들이 우리들의 글을 찾는 뭔가 시나 수필 소설을 써야지 내 감각적으로만 쓰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성을 주제로 한 소설 작품이 거의 80%나 되며 그러한 내용들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풍자라고 하는 것은 비판 대상을 신날하게 비꼬는 공격적인 글쓰기지만 김유정은 대상에 대한 연민 연정 동정을 느끼게 하는 그러한 작품이었다.


우리 일행은 춘천 닭갈비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힐링 레일바이트를 탈 때는 폐달을 밟느라 다리에 쥐가 났지만 그 아픔도 행복한 즐거운 하루였다. 


2022.12. 1


# 소정 손유순/1990 - 현재소정도예연구소장,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1-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김대중 대통령 접견), 2002-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한국도자재단, 2004-경기도으뜸이 도자기 부문 선정(청자 참나무재유 개발)-경기도지사, 2014-사단법인) 다온시문화협회 시인, 본지 도자기 부문 자문위원, 2020-한국문학생활회 이사, 감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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