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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이야기 7] 천년사찰의 관문 '용문역'
  • 박광준
  • 등록 2022-11-09 08:47:51
  • 수정 2022-11-09 09: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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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중앙선의 철도역으로, 1941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역사(驛舍)가 소실됐다가 1957년 6월 14일 역사를 신축해 2009년 2월 3일까지 사용한 후 임시역사로 이전했다. 용문산의 옛지명은 ‘미지산’이라 불렸었다. 조선시대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역적으로 몰릴 당시, 그의 제자인 '조욱'이 미지산으로 피신해 이 곳에 정착하면서 그의 호인 '용문'을 따서 미지산을 용문산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용문산의 이름을 따와 지명을 '용문(龍門)'이라 했다.






용문산과 용문사, 용문5일장 등을 찾는 관광객들로 인해 이용객이 많은 철도역으로, 2007년 6월 1일부터 무궁화호 전 열차가 정차하기 시작했다. 서울 청량리역으로부터 약 60km 거리이고, 원덕역과 지평역 사이에 있다. 2009년 12월에는 서울과 이어지는 전동차가 용문역까지 운행됐다. 중앙선 복선전철화사업은 2005년 청량리~덕소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2007년 12월 27일 덕소~팔당구간, 2008년 12월 29일 팔당~국수구간 개통으로 이어졌고, 국수~용문구간은 2009년 12월 개통, 그리고 용문~원주구간은 2010년 12월 개통됐다. 



# 주변 관광지


용문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고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고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년~935년)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년)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년~1450년)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고,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 용문산관광지



용문산관광지는 용문산 입구에 조성된 휴양타운으로서 양평군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1971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주변에 용문사, 천년은행나무, 정지국사부도및비, 용문산전투전적비 등 문화유적 등의 볼거리가 많고, 용문산과 중원산에서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려와 사시사철 관광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관광지 입구에는 관광단지가 조성돼 있다. 산나물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산채정식을 판매하는 식당가와 각종 산나물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관광지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잔디광장과 분수대, 야외공연장과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고 양평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양평군친환경농업박물관이 위치해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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