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국의 전통사찰 50] 포교전법도량 '조계종'
  • 박광준
  • 등록 2022-10-30 18:08:07
  • 수정 2024-04-02 03:44:45

기사수정


[박광준 기자] 조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과 종회사무처(宗會事務處)가 본부를 두고 있는 포교전법도량(布敎傳法道場)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할교구 본사로, 이전의 중동중학교 자리에 있었던 각황사(覺皇寺)를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은 것이다. 1910년 전국 승려들의 의연금으로 창건한 각황사는 원흥사(元興寺)에 있던 조선불교중앙회무소(朝鮮佛敎中央會務所)를 옮겨 왔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조선의 모든 사찰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원찰인 박문사(博文寺)에 귀속코자 했다. 만공(滿空) 월면(月面, 1871~1946)과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등은 이에 저항하면서, 조선 불교의 통합을 위해 총본산 건설운동을 추진했다. 특히 1935년에 열린 전국 31곳의 본사 주지회의에서는 총본산 건설의 원칙으로 ‘순 조선식 법당’을 중심 불전으로 건립토록 결정했다.


일제강점기에 보천교는 민족운동을 펼치면서, 1925년에 본거지인 전라북도 정읍에 십일전(十一殿)을 건립했다. 이 건물은 전통적인 양식을 갖추면서도 일제의 신사(神社)에 뒤지지 않는 규모였다. 당시 불교계는 십일전을 지금의 조계사인 각황사(覺皇寺)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1937년 3월에 1만2000원으로 건물을 산 다음, 3월 26일∼5월 5일에 해체하면서 4월∼5월 중순에 부재를 옮겼다. 공사는 1938년 10월 중순 경에 마무리됐고, 25일에 낙성봉불식을 열었다. 그 뒤 2004년에 대들보를 교체하고 활주를 제거하는 등 해체 수리해 오늘에 이른다.


이 건물은 당시에 궁궐 목수로 불렸던 최원식(崔元植)이 도목수를 맡아 건립했다. 앞면 7칸, 옆면 4칸의 1층 건물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공포는 내7출목, 외5출목으로, 기둥의 중간에도 공포를 배치한 다포식 구조이다. 건물 안에는 앞뒤로 1줄씩 고주(高柱)를 세웠고, 7개의 도리로 지붕을 지지하게 했다.



상량문은 권상로(權相老, 1887~1965)가 지었고, 낙성에 맞춰 도갑사에서 옮겨온 조계사 목조여래좌상(보물, 2022년 지정)을 봉안했다.이 불상은 일섭(日燮, 1900~1975)이 제작한 것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함께 지녔다. 그러나 건물의 규모에 비해 불상의 크기가 작아, 최근에 목조삼세불좌상을 봉안하기 위해, 그 오른쪽에따로 불단을 설치했다. 


이 건물은 조계사로 옮겨 지으면서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기둥 아래에 높은 주춧돌을 세우고 4곳의 추녀 밑에 활주를 받치는 등 일부를 보강했다. 높은 주춧돌을 놓은 것은 전통 건축 수법이지만, 일제강점기에 건물을 해체 수리할 때 기둥 밑둥이 썩는 것을 방지하려고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한국 불교의 상징인 조계사의 중심 불전으로, 1920년대에 건립된 1층 불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절에는 종각.범종.사리탑비와 7층석탑 1기가 있다. 1층 목조건물이었던 종각은 1973년 8월에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해 2층 6각으로 개축했다. 사리탑비는 1930년 스리랑카의 달마파라(達摩婆羅)가 부처의 진신사리 1과(顆)를 가져와 승려 대표 김금담(金錦潭)에게 전해준 것을 기록한 비명이고, 7층의 석탑은 달마파라가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또, 경내에는 수령 약 500년으로 추산되는 백송(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과 수령 약 400년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 일주문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돼 있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통상적으로는 일주삼간(一柱三間)이라 해 일렬로 세 개의 문을 갖는다. 이렇게 한 줄로 늘어놓은 이유는 일심(一心)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때 일심이란 사찰에 들어서기 전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오라는 뜻이다. 또한 세 개의 관문을 갖는 이유는 성문, 연각, 보살로 나뉜 불교의 여러 교법이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의 길로 통한다는 '법화경'의 사상을 담고 있다.


통상 일주문에는 현판을 달아 사찰의 격을 나타내는데 조계사 일주문에는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라는 현판을 걸어 조계사가 창건 당시 총본산 건설 운동의 일환으로 건축됐음을 나타내고 있다. 조계사는 오랫동안 일주문이 없었으나 2005년 3월 조계사 중창불사 당시 일주문 건립 기공식을 갖고, 2006년 10월 9일 현판과 주련을 달아 최종 완공했다. 현판과 주련의 글씨는 당시 한국서예가협회장이었던 송천 정하건 선생이, 그리고 서각은 중요무형문화제 106호인 철재 오옥진 선생이 조성했다.



일주문 주련


以心傳心是何法 이심전심시하법

佛佛祖祖唯此傳 불불조조유차전


마음에서 마음에 전하는 법이 그 무슨 법인가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가 오직 이것을 전함이로다.


曹溪山上一輪月 조계산상일윤월

萬古光明長不滅 만고광명장불멸


조계산 꼭대기에 둥근 달처럼

만고에 이 지혜광명 영원히 멸하지 않네.


# 조계사 대웅전



2000년 9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계사 대웅전은, 1935년 한용운.박한영.송종헌 등이 중심이 돼 불교 총본산 건립운동을 추진하던 중, 1936년 전라북도 정읍의 보천교(普天敎) 교주 차경석이 죽으면서 법당으로 쓰이던 십일전(十一殿)이 경매에 부쳐지자 이를 사들여 1937∼1938년 조계사의 전신인 태고사(太古寺) 대웅전으로 사용하다가 태고사가 조계사로 바뀌면서 조계사 대웅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단층 석조기단 위에 지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규모가 웅장하고 부재 단면도 크다. 겹처마이고 공포는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식(多包式) 7량 구조이고, 내부 전후면에 8.5m짜리 내진주(內陳柱)를 각 6개씩 총 12개 세웠다. 기단 윗면에는 화강암을 전돌처럼 다듬어 깔았고, 네모난 이중받침 위에 정교하게 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 하단에 석주(石柱)를 끼워넣어 비가 들이쳐 썩는 현상을 막았는데 결과적으로 보천교의 십일전보다 건물이 더 높아졌다.



천장은 소란반자와 외진부에 빗반자를 마련한 우물천장이다. 소란 안에는 학무늬, 봉황무늬, 희자(囍子) 무늬를 그려넣었고 빗반자의 앞면과 옆면 앞부분에는 불화를, 옆면 뒷부분과 뒷면에는 산수화와 화조화를 그려넣었다. 정면 2분합문을 비롯해 4면의 창호 모두 꽃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 문살과 창살로 돼 있다.




안에는 도갑사(道岬寺)에서 옮겨온 조계사 목불좌상(석가불)과 조계사 석가불도가 있고, 후불벽 좌우에는 1978년에 제작한 천불도가 걸려 있다. 현판은 조선 제14대왕인 선조의 여덟째 아들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의 해서체 글씨로, 화엄사 현판 글씨를 그대로 복사해 만든 것이다.


# 극락전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 2층짜리 건물이 극락전이다. 극락전의 내부 중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좌우에는 각각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좌우 측면으로 십대명왕이 자리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 만 억 국토를 지난 극락정토라는 곳에 계신 부처님이다. 극락이란 모든 중생을 청정하고 완전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주로 제사와 영가천도 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극락전 2층은 여러 법회, 신행단체 모임, 교육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설법전과 소설법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8각10층 부처님진신사리탑


8각10층 부처님진신사리탑'과거의 조계사 부처님진신사리탑은 일제 강점기에 건립돼 우리나라 전통양식에 맞지 않고 왜색을 띄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었다. 사리탑은 이러한 지적을 개선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여법히 모시고자 하는 사부대중의 염원을 반영해 팔정도와 십선법을 상징하는 8각 10층으로 2009년 10월 8일에 새로 건립했다.


탑의 외부에는 8여래상, 8보살상, 8신중상 등을 부조 장엄했고, 내부에는 1913년 스리랑카로 부터 전해진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하고 소형불상 일만 사천 분을 모셨다. 또한 1660년 은진 쌍계사각판 법화경 7권 한 질과 25조 가사 한 벌 등을 안치해 한국불교 중심지에 길이 전승될 사리탑의 위엄을 갖췄다. 


# 범종루

 

범종루


법고, 운판, 목어, 범종 등의 사물이 있는 곳으로, 매일 새벽 예불(오전 4시경)과 저녁 예불(저녁 6시경) 그리고 특별한 행사 때 치게 된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법고 → 범종 → 목어 → 운판이다.


이 중 법고는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면서  떠도는 영혼을 천도키 위해,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키 위해, 범종은 욕계의 6천과 색계의 18천과 무색계의 4천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범종은 새벽 예불 때 28번 저녁 예불 때 33번을 친다. 이는 새벽에 28개의 지옥문을 열어 사시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저녁에 33개의 천상의 문을 열어 모두 극락으로 인도하는 의미에서 조석으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 회화나무


회화나무조계사 회화나무 역시 백송과 함께 500년 가량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지정보호수인 회화나무는 가장 늦게 잎이 돋아 가장 늦게 잎이 지는 것으로 예로부터 군자의 성품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목으로도 불리고 있다.


# 천진불


천진불 조계사 천진불은 2006년 3월22일에 봉행됐다.


아기 부처님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천진불은 한국불교총본산인 조계사에서 어린 불자들이 뛰어 놀면서 부처님 법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길 기원하기 위해 제작됐다. 


# 조계사 백송


천진불과 백송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조계사 백송의 나이는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 14m, 뿌리부분 둘레 1.85m이다.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나무의 한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바로 접해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고,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사적비


사적비사적비는 지관스님(전 총무원장)이 80년 역사의 한국불교 중심도량에 사적비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9천자에 가까운 사적을 담아 25자 높이로 2009년 10월 8일 제작 됐다. 비문은 지관스님(전 총무원장)께서 직접 작성했고 귀부와 이수는 장중한 고달사원종국사탑비의 귀부와 이수를 바탕으로 하되, 중도조화의 미덕을 갖추도록 제작했다. 


사적비의 내용은 일본의 식민통치 일환인 한일불교 통합 획책에 대응해 진행된 한국불교 총본산 건립운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80여 년의 종단 근현대사를 담아 조계사의 연혁을 정리했다. 


사리탑비는 1930년 스리랑카의 달마파라(達摩婆羅)가 부처의 진신사리 1과(顆)를 가져와 승려 대표 김금담(金錦潭)에게 전해준 것을 기록한 비명이고, 7층의 석탑은 달마파라가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