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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99] 김명윤을 추모키 위해 창건한 창원 '도봉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2 14:55:05
  • 수정 2022-10-03 0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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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도봉서원은 1713년 김명윤(金命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해 위패를 봉안했다. 선현의 배향과 교육에 힘쓰다가 1869년(고종 6)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으나 1974년 복원됐다.


경내에는 묘우(廟宇).신문(神門).강당.동재(東齋).외문(外門) 등이 있다. 묘우에는 김명윤의 위패가 안치돼 있고, 강당은 여러 행사와 회합에 사용된다. 향사는 매년 3월 13일 한 차례만 지내고 있다.




김명윤의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경찬(景纘), 호는 동산(東山). 아버지는 김한(金漢)이고, 어머니는 감찰을 지낸 이옥성(李玉成)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김명윤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살았다. 1583년(선조 16) 19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1584년 사헌부감찰에 이어 선전관이 됐고, 1585년 훈련부정에 이어 인동부사가 됐다. 





1590년(선조 23) 통신부사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종사관이 돼 일본에 갔다가 1591년 돌아와 일본의 풍토.민요.풍속과 진실된 것과 거짓된 것을 그림 그리듯이 기록했다. 선조가 김명윤의 글을 보고 곧 파주목사에 제수했다.





파주목사로 재임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온 힘을 다 썼다. 1594년 충주목사로 재임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 왜군이 성을 포위하자 이를 크게 물리쳤다. 


1599년 진주목사가 됐고, 1602년에는 홍주목사가 된 데 이어 제주목사가 돼 1604년 임기를 마쳤다. 1605년 동부승지가 됐다가 그 뒤 창원으로 돌아와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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