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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91] 개국공신 신숭겸을 추모위해 창간한 곡성 '덕양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9-28 08: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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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덕양서원은 1589년(선조 22) 지방유림의 공의로 신숭겸(申崇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든 건물이 불타고 사우와 위패만 보존돼 오던 중, 1603년에 사우를 중수하고 1665년에 서원의 규모를 갖춰 건물을 중수했다. 


그 뒤 1695년(숙종 21) ‘德陽(덕양)’이라고 사액돼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됐다가 1934년 지방유림에 의해 복원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3칸의 연서재(燕序齋), 3칸의 신덕재(愼德齋), 내삼문(內三門), 3칸의 강당, 2칸의 전사청(奠祀廳)과 비각(碑閣).외삼문(外三門).고직사(庫直舍).중수비(重修碑) 등이 있다.


사우에는 신숭겸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돼  있다. 연서재와 신덕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로서 향사 때 제관들의 숙소 겸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강당은 서원의 여러 행사나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전사청은 제향시 제수(祭需)를 마련해 보관하는 곳이다.



내삼문은 성인문(成仁門)이라 해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쪽 협문으로 돼 있고, 고직사는 관리인이 주거하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중정(中丁)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태안사 들목에 서 있는 ‘장절공 태사 신선생 영적비’(壯節公太師申先生靈蹟碑)의 신선생은 신숭겸(申崇謙, ?~927)을 말한다. 그는 곡성 출신으로 왕건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 장절(壯節)은 태조가 내린 시호이다.






몸집이 장대하고 무술이 뛰어났던 그는 왕건을 도와 궁예를 몰아내는 데 큰 공헌을 했고, 927년 왕건을 위협하는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가 전사하자 그의 용마가 머리를 물고 고향과 인접한 태안사의 뒷산에 와서 3일간을 울다가 굶어 죽었기에, 이곳에 장군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신숭겸의 고향인 곡성을 돌아다녀보면 그와 관련 있는 유적이 적잖이 눈에 띈다. 죽곡면 삼태리에는 말을 매었다는 계마석과 물을 마셨다는 구룡리의 신공정이 있고, 오곡면 덕산리에는 1589년 건립돼 숙종 때 사액받은 덕양사가 있고며, 그가 태어난 곳 목사동면 구룡리에는 용산재가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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