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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87] 고려 충신 양능양을 기리는 남원 '용장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9-25 0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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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용장서원은 고려 목종 때 김치양 일파의 난으로 은거한 절의의 충신 양능양(梁能讓)을 주벽(主壁)으로 해 고려 때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양주운(梁朱雲)과 고려 후기에 대사성을 지낸 김구용(金九容), 임진왜란 때의 공신 양대박(梁大樸)을 봉안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됐고, 지난해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됐다.



1302년(충렬왕 28) 처음 세웠을 때는 서원의 이름을 용성사(龍城祠)라 했다. 그 후 1402년(태종 2년)에 용장 서원(龍章書院)이라 개칭했고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정조 때 지금의 위치에 중건했다. 그 후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됐다가 훗날에 다시 세웠다.



건축물 출입구에 용장서원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솟을삼문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강당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칸 반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기둥의 경우 전면의 것은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방주이다.


양기와 지붕을 덮었다. 평면에는 중앙 2칸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각 1칸씩 방을 배치했다. 강당 중앙에 경의당(敬義堂)이라는 현액이 걸려 있다. 강당 뜰 앞에는 1962년에 세운 기적비가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팔작지붕으로 겹처마 형태이다. 기둥은 두리기둥이고, 양쪽 박공 머리에 병풍판을 달았다. 정면 3칸은 모두 동일한 간격으로 분할하고 두 짝 열 개의 교살문을 달았다. 정면 중앙에는 숭덕사(崇德祠)라는 현액이 걸려 있다. 서원은 돌담장으로 둘러쳐 있으며 사당 정면 중앙에 내삼문을 내었는데 평상문이다. 내삼문은 두리기둥이 쓰였고 양기와를 얹혔다.



남원 충신들의 사당으로, 김구용을 제외하면 모두 남원양씨 충신들을 모셨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절들을 모신 서원으로서의 의의가 크다. 특히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 등이 짜임새 있고 규모가 있는 건축물이다. 십노사와 함께 호남 지방의 전형적인 서원 형태의 특징을 보여준다. 용장 서원과 십노사는 사당이 팔작지붕인 점 또한 공통적인 특징이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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