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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이어보기 18] 제17대 임금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 ‘영릉’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25 13:25:12
  • 수정 2023-03-13 13: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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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영릉[이승준 기자] 영릉은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이다. 왕릉과 왕비릉이 한 언덕에 같이 있는 경우 대개는 봉분을 나란히 두는 쌍릉의 형식을 택한다. 하지만 영릉은 특이하게도 왕릉과 왕비릉이 상하로 조영돼 있다. 


이는 풍수지리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놓을 경우 생기가 왕성한 정혈을 비켜가야 하기 때문에 좌우 쌍릉을 쓰지 않고 상하혈 자리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것이다. 이러한 배치를 동원상하릉이라고 한다. 동원상하릉 중에서는 영릉이 조선 최초이다.


인선왈후왕릉의 봉분 주위로는 곡담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왕비의 능에는 곡담이 없어 두 능이 한 영역 안에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의 기둥에 방위를 표시하는 십이지를 문자로 새겨 놓았다. 이는 간소화된 능제로서, 세조 광릉 이후 사라졌던 조선 초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풍석이 성종의 선릉에서 다시 나타났다가, 이곳 효종의 영릉에서부터 없어졌다.


효종영릉(항공사진)효종이 1659년(효종 10) 5월 4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같은 해 10월 29일 건원릉 서쪽 산줄기에 능을 조성했다. 그런데 1673년(현종 14) 병풍석에 틈이 생겨 광중에 빗물이 스며들었을 우려가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능을 옮겨야 한다는 천장론이 불거졌다. 


효종 영릉 비각따라서 현재의 위치인 세종의 왕릉 영릉 동쪽으로 입지를 정하고 능을 열어보았는데, 그동안의 우려가 무색하게 물이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영릉은 천장했으나 이에 연루된 자들은 면직을 당해야 했다.


영릉 천장 다음 해에 인선왕후가 승하해 효종 왕릉 아래에 인선왕후의 능을 조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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