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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23] 영조 어머니를 모신 육상궁 등 '칠궁(2)'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07-09 09:07:04
  • 수정 2024-04-15 17: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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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과 연우궁의 출입문

# 영조 어머니를 모신 육상궁


육상궁과 연우궁은 영조의 생모와 영조의 후궁 신위를 모시 사당으로, 제사를 준비하는 이안청이 동서 양쪽에 있고 출입문도 장엄하다. 육상궁과 연우궁은 한 건물로 쓰고 있다. 모두 3칸으로 되어 있는 육상궁은 연우궁과 함께 있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육상궁과 연우궁의 뒷쪽에서 바라본 ㄹ출입문과 이안청 왼쪽 칸이 숙비 최씨를 모신 육상궁이고, 오른쪽 칸이 정빈 이씨를 모신 연우궁이고 가운데는 빈 공간이다. 육상궁은 원래 숙종의 후궁이고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우가 있던 숙빈묘로, 육상은 복을 기린다는 뜻이다. 


# 효장세자 어머니를 모신 연우궁



연우궁은 영조의 후궁으로 효장세자의 어머니인 정빈 이시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효장세자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후일에 왕으로 추존돼 진종이 됐다. 영조는 1724년 즉위하면서 정빈 이씨를 빈으로 봉했다. 연우궁은 원래 경복궁 북부 순화방에 세워졌으나 고종 7년(1870년) 육상궁에 합사됐다. 건축양식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목조건물이면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칠궁은 육상궁과 연우궁이 한 울타리 안에 있고, 경우궁, 대빈궁, 선희궁, 저경궁, 덕만궁 등 나머지 5개궁이 한 울타리 안에 있다.


냉천정의 측면 냉천정의 우물냉천 오언시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연우궁의 현판이 틀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연우궁이 아닌연호궁으로 표기하고 있다.  현판의 한자도 ‘우(祐)’ 자를 ‘호(祜)’로 표기했고, 입간판에도 연호궁이라고 표기했다. 궁궐의 현판 등 재산관리를 총괄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와 백과사전 등에는 효장세자를 낳은 정빈 이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대해 연우궁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 순조의 어머니를 모신 경우궁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으로서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의 신위를 모신 궁으로, 수빈은 순조20년(1820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신주를 창경궁 안 건물에 모시고 현사궁이라 이름 지었고, 이후 현재의 종로구 계동인 양덕방에 따로 묘를 세우고 이름을 경우궁으로 지어 신주를 모셨다. 이후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현재의 옥인동인 인왕동으로 옮겨졌다가 1908년에 다른 궁과 함께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정조의 어머니를 모신 선희궁


선희궁은 영조의 후궁으로 죽은 후 칭호를 받은 장조를 낳은 영빈 이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장조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세자에 정해졌으나 영조의 미움을 받아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영빈ㅇl 영조 40년(1764년)에 세상을 떠나자 백운동에 묘를 세워 의열묘라 이름 지었다. 정조 12년(1788년)에 묘의 이름을 선희궁으로 바꾸었고, 고종 7년(1870년)에 육상궁에 옮겨져 있다가 백운동으로 다시 돌아갔다.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렀다. 


# 경종의 어머니를 모신 대빈궁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신위가 모셔진 사당으로,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 민씨를 폐비시키고 후궁으로는 유일하게 왕후에까지 올랐다가 5년 만에 다시 폐비가 돼 사약을 받았다. 그 후 경종 2년(1722년)에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돼 지금의 낙원동에 해당되는 경행방에 사당을 세웠다가 고종 7년(1870년) 육상궁으로 옮겼다. 1887년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가 순종 2년(1908년)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겼다. 


# 원종의 어머니를 모신 저경궁 



저경궁은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인조의 생부인 추존왕 원종의 옛날 집이자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지금 중구 남대문로 3가인 회현방 송현에 있었다. 이름 역시 송현궁이었는데, 영조 31년(1755년) 원종의 생모인 경혜유덕인빈김씨의 위폐를 봉안하고 향사하면서 저경궁으로 고쳤다. 이후 1870년 경우궁의 별묘로 위폐를 이안했다가 1886년 다시 육상궁으로 이안했다.


# 영친왕의 어머니를 모신 덕안궁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 이은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시의 위폐를 봉안한 사당이다. 엄씨는 1897년 영친왕을 낳으면서 귀인으로 책봉된 뒤 1903년 순헌황귀비 칭호를 받았다. 이때부터 경운궁 안 명례궁 터에 경선궁 터에 경선궁을 세우고 이곳에서 살다가 1911년 7월 사망한 뒤 이름을 덕안궁으로 고쳤다. 이후 1913년 지금의 태평로1가에 새로 궁을 짓고 엄비의 묘우라 해 이름을 덕안궁으로 했다. 1929년 7월 덕안궁을 육상궁으로 하다가 덕안궁이 옮겨오면서 비로소 칠궁이라 하게 됐다./사진-박광준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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