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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95] 한국영상대학교와 극단 제자백가의 정인숙 예술감독 안네 프랑크 의 일기 원작 주혜자 연출의 안네 프랑크의 일기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2-03-28 21: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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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세실극장에서 한국영상대학교(총장 류재원)와 극단 제자백가의 정인숙 예술감독, 안네프랑크의 일기 원작, 류지미 드라마트루기, 주혜자 연출의 <안네 프랑크>를 관람했다.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는 1929년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넉넉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Otto Frank)와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Edith Holländer Frank)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안네가 네덜란드의 유대인 소녀로 유명하지만 사실 안네의 일기는 독일어로 쓰였고 독일의 유대계 독일인 집안에서 태어났었다.


나치 치하에서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1933년 프랑크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민을 떠났고 안네는 네덜란드에서 자랐다. 뒤에 나치 독일이 유럽 전체로 동맹국이나 점령국을 확대해 가며 네덜란드도 나치 치하가 되자 프랑크 일가는 미국 또는 캐나다로 망명을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홀로코스트를 피해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숨어 지내게 된다. 


당시 은신처 건물은 회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제대로 대화를 나누거나 일상생활을 하기도 어려웠으며,[4] 공간이 좁아서 여러 명이 함께 방을 사용해야 했다. 물품은 늘 부족하여 작은 속옷을 억지로 입거나 개인 물건을 가지거나 청결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누구라도 견디기 어려운 답답한 환경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외로 휴가를 다녀올 정도로 유복했던 가정에서 자란 안네에게는 특히나 열악했을 것이다. 안네는 은신처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에 비하면 천국 같은 곳이라며 견뎌내는 어른스러운 모습도 보여준다.


안네의 일기는 안네가 13세 생일선물로 일기장을 받은 1942년 6월부터, 은신처가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수용소로 전원 압송된 1944년 8월까지 약 2년 2개월 동안 쓰였다. 안네는 은신처에서 함께 지내던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지고, 이후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졌다. 베르겐-벨젠 수용소의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했고, 이미 뼛속까지 쇠약해져 있던 안네의 언니 마르고트는 베르겐-벨젠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티푸스로 추정되는 질병을 앓다가 결국 사망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안네 또한 모든 힘을 잃고 1945년 2월 혹은 3월 경 티푸스로 추정되는 모종의 이유로 결국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몇 주 뒤인 1945년 4월 15일 영국군과 캐나다 군이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키고 피수감자들을 구출했다. 만약 안네가 수용소에서 딱 한 달만 더 버텼다면 영국군과 캐나다 군이 그녀를 구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독자들과 수많은 역사의 증인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안네의 일기는 프랑크 가족의 친구이자 은신처 삶을 도왔던 네덜란드 여성 미프 히스(Miep Gies)가 가지고 있었다가, 가족 가운데 소련군에 의해 홀로 살아남은 오토 프랑크가 네덜란드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전하여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안네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말대로 안네는 비록 수용소에서 15세의 나이로 죽었지만 그녀의 일기는 전 세계에서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초연은 1960년대 명동국립극장에서 극단 신협의 전혜린 번역, 이해랑 연출로 장민호(안네 아빠), 백성희(엄마), 최 삼(판단), 유계선(판단 부인), 옥경희(안네), 전향이(안네), 전세권(페타)...이 출연해 성공을 거두었고, 1968년 필자 연출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도 공연했다. 故 황창배(안네 아빠, 국전 대통령상 수상) 명륜성, 최남진, 민정기(이중섭 미술상 수상), 박승순(삼성재단 이사), 박미순...이 출연했다.


영화로는 1959년 조지 스티븐스(George Stevens)가 감독하고, 밀리 퍼킨스(Millie Perkins)가 안네 프랑크 역, 조셉 쉴드크라우트(Joseph Schildkraut)가 아빠, 셸리 윈터스(Shelley Winters), 리차드 베이머(Richard Beymer)가 피터, 다이안 베이커(Diane Baker)가 마르코트 출연한 흑백영화로 극단 신협의 공연 이후에 개봉되어 장면 하나하나가 신협의 공연장면과 똑 같았기에 놀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출가 주혜자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가 출신으로 <더 브릿지>, , <아쿠아마린> <피터팬> 등을 연출했다. 현재 부산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연출가 겸 작가이다. 사람들은 그를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연출자로 꼽는다.


<안네 프랑크>는 비언어 신체극이다. 몸짓으로 시종일관 극이 전개되고 마무리를 한다. 물론 음향효과와 음악효과가 극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에게서 유행되던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가사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에 징집된 함부르크 출신의 한스 라이프(Hans Leip, 1893-1983)가 썼으며, 제목은 그의 애인인 “릴리”와 군 간호사 “마를렌”의 이름을 조합했다고 한다. 


이것은 1939년 랄레 안데르센(Lale Andersen)에 의해 작곡 발표되었다. 후에 1941년 독일군방송이 된 “벨그라데 라이오 방송(Radio Belgrade)”이 음반 더미에서 이 앨범을 찾아내고, 나치 정부의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 (Joseph Goebbels)는 이 음악을 방송금지 했으나, 이 음악을 다시 틀어달라는 군인들의 편지가 방송국에 쏟아져 들어오자, 요제프 괴벨스는 마지못해 자신의 마음을 바꾼다. 이때부터 이 노래는 전 유럽에 방송되고 인기가 급상승했다. 이 노래와 함께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년 의 오페라 <탄호이저(Tannhäuser)>에 나오는 “순례자의 합창(Beglückt darf nun)”이 극의 대미에 절정을 이룬다.


무대는 입체로 된 크고 작은 직사강형의 입체조형물을 이동 배치하고, 은신처 문은 낡은 책장을 문처럼 열고 닫는 것으로 설정을 하고 큰 소대가 무대 좌우에 있어 등퇴장 로가 되기도 한다. 안네의 일기의 내용대로 전개가 되면서 출연자들의 개별 동작이나 전체동작이 무용처럼 조화를 이루고, 비언어극이지만 관객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감동을 창출시킨다.


고병선이 판단, 권정택이 뒤셀, 노혜란이 키티, 문현영이 판단 부인, 박동훈이 안네 아빠, 박정림이 엄마, 신승오가 피터, 윤장원이 클레이만, 전상준이 퀘흘레르, 최재희가 마르고트, 최하늘이 미프, 한 비와 한여경이 멀티, 그리고 하지운이 안네 프랑크로 출연해 비언어 신체극으로 호연과 열연 그리고 율동을 펼쳐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정인숙, 드라미트루기 류지미, 액팅코치 홍현우, 무대디자인 우지은, 조명디자인 장영섭, 안무 이동원, 음악 이영재, 음향감독 최인용, 음향보조 홍유정, 조명오퍼 박선영, 류송이, 조연출 전지은, 제작감독 이훈경, 제작PD 유난희, 기획 홍보 이재걸 김진규, 그래픽디자인 김도경, 진행 김소진 송민선 신길수 임서연, 프로듀서 김민섭 등 제작진과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한국영상대학교(총장 류재원)와 극단 제자백가의 정인숙 예술감독, 안네프랑크의 일기 원작, 류지미 드라마트루기, 주혜자 연출의 <안네 프랑크>를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 비언어 신체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첨언하면 <안네 프랑크>는 정동 세실극장의 폐관공연이다. 서울 정동 세실극장이 42년 만에 문 닫는다. 세실극장은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로 떠오르기 전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연극의 중심지였다.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2013년 서울시는 세실극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미래유산도 경영난 앞에서는 무력했다.


김민섭 세실극장장은 29일 “임대료 등 매달 운영비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운영을 포기하기로 했다”며 “내년 1월 7일까지 공연하는 비언어극 ‘안네 프랑크’를 끝으로 극장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영난으로 인한 극장 폐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 최초 민간 소극장 ‘삼일로 창고극장’은 2015년, 지난 4월에는 연희단거리패의 게릴라극장도 문을 닫았다. 세실극장은 1976년 320석 규모로 개관했다. 연극인회관이 대학로 문예회관으로 가기 전까지 세실극장에 머물렀고, 옛 대한민국연극제(현 서울연극제) 1~5회도 세실극장에서 열리는 등 한국연극의 심장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뒤 후원 등이 끊기면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 세실극장을 맡은 김민섭 극장장은 대학로와 차별화를 위해 아동극과 청소년극을 무대에 올리고, 덕수궁을 끼고 있는 위치를 이용해 관광객용 공연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해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을특별시로부터 세실극장 폐관 대신 발전적인 대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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