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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02]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서대문지부 극단 로얄씨어터, 류근혜 연출 ‘봄비 온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2-02-27 21:00:35
  • 수정 2023-02-15 08: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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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아트홀 1관에서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서대문지부 극단 로얄씨어터의 유진월 작, 류근혜 연출의 <봄비 온다.>를 관람했다.


유진월 극작가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희곡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7년부터 한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19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그녀에 관한 보고서」로 등단한 이후 「불꽃의 여자 나혜석」, 「헬로우 마미」 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다양한 여성의 삶에 대한 페미니즘의 시각을 중시하고 있다. 


「푸르른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연인들의 유토피아」, 「연인」 등에서는 섬세한 시적 언어로 문학적인 희곡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들만의 전쟁」, 「누가 우리들의 광기를 멈추게 하라」 등은 한국사에 대한 문제적 시선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페미니즘 희곡사인 『한국 희곡과 여성주의 비평』 이후로 『영화, 섹슈얼리티로 말하다』에 이르기까지 연극, 영화, 여성 관련 연구서를 다수 출간했고 창작 분야에서는 『유진월 희곡집 1』과 『유진월 희곡집 2』를 출간했다. 동랑희곡상, 올해의 한국 연극 베스트 5 작품상, 국립극장창작공모 당선 등 연극 관련 상을 수상했다.


류근혜 연출가는 전 한국여성연극인회 회장으로 상명대 미술학과 출신이다. 대학시절 연극을 시작으로 1980년 극단 광장 연출부에 들어가, 연출을 시작해 100여 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혜화동 1번지 연극실험실 1기 동인으로 출발, 공연예술진흥회 청소년 축제 지도위원, 전국청소년연극제 심사위원, 전국대학연극제 심사위원, 전국연극제 심사위원, 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부회장, 현 상명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현 극단 로얄 씨어터와 극단 캔버스 상임 연출로 활동 중이고 연극계의 선도자인 연출가다.



무대는 기차역, 버스터미널, 탁자와 의자, 벤치, 화실의 화폭을 올려놓는 이젤, 낮은 탁자 의자들로 배치되고, 배경 상수 쪽에 창문으로 설정된 사각의 공간을 통해 마치 은구슬, 금 구슬이 쏟아지는 듯싶은 영상으로 봄비 내리는 광경을 연출해 낸다. 후반에는 인공촛불 여러 개를 탁자와 벤치에 올려놓고 마지막 장면을 관객의 기억 속에 아로 사겨놓는다.


연극은 그녀가 화가지망생이었던 그를 화실에서 처음 만나고, 그가 결혼한 후에도 그녀를 만나 모델로 그리다가 매력 점을 발견하고 마음을 기울인다. 캔버스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보고 그녀 역시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살포시 마음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어느 땐가 봄비가 오는 날 그는 그녀를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그녀는 그의 기일에 홀로 그를 회상한다. 회상 속에서 그와 그녀는 다시 만난다. 그러나 봄비 속에 두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는 봄비처럼 사라져버린다.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 (1982~1967)의 그림에서 소재를 따왔다. 에드워드 호퍼는 흔히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 화가로 일컬어진다,  사실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한 그는 시가지나 건물 등을 즐겨 그렸으며 밤의 레스토랑, 인적이 끊긴 거리, 관람객이 없는 극장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미국의 영화감독과 현대사진작가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바로 호퍼다. 알프레드 힛치콕도 그의 그림에서 이미지를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건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거나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무언가의 특징을 그 화가가 잘 표현한 작품을 통해 이해한다.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를 막 떠나왔거나 떠나보낸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기억 한 구석에 숨겨둔 지울 수 없는 상처나 아픔이 있고, 또 돌이키기 싫은 과거가 있기 마련인데, 호퍼의 그림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숨겨진 이러한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또한 그의 그림 안에 있는 주인공과 공감대를 형성해 보라고 우리에게 권유하는 듯싶기도 하다.  에드워드 호퍼는 보들레르의 시를 즐겼으며 고독, 도시 생활, 근대성, 밤이 주는 위로, 여행과 관련된 장소에 관심을 두었다. 


1925년에 호퍼는 살고 있던 뉴욕에서 뉴멕시코까지 혼자 운전하며 여행을 다녔다. 그 이후로 몇 달 동안을 후진 모텔 방이나 차 뒷자리, 야외나 식당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41년에서 1955년까지 미국을 다섯 번이나 가로질렀는데 그의 그림들은 여행 장소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준다. 호퍼 그림의 중심 주제는 외로움이다. 호퍼의 인물들은 보통 혼자 큰 공간 안에 고립되어 있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편지를 읽거나 바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신다. 레스토랑이나 아파트 창밖의 움직이는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기차 안에서 책을 읽는다. 가끔 남녀 인물들이 같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마주치지 않는 그들의 시선은 외로움이 혼자 있을 때 보다 두 배로 느껴진다.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을 곳에서 떠돌아다니며 잠시나마 외로움을 달래려 섹스나 친구를 찾고 있는 듯하다. 시간대는 주로 어두운 밤이다.



그림들 안에 혼자 고립된 여자가 있는 공간은 크고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와 관련된 선택의 후회  관련된 이야기, 배신이나 상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얘기한 것처럼 호퍼의 그림은 슬픔에 대한 그림이지만 슬픈 그림은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공동의 고립감은 혼자서 외로운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연극 <봄비 온다.>에서도 바로 이런 분위기가 펼쳐지고, 또 연출되면서 그로 출연한 윤여성, 그녀로 출연한 하영화 역시 같은 분위기를 창출해 내, 관객의 기억 속에 깊이 아로 사겨놓는다. 장예승이 음성으로 출연한다.


무대디자인 제작 박재범, 조명디자인 이상근, 작곡 김 문, 조연출 강주희, 음향 이관희, 기획 유준기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서대문지부 극단 로얄씨어터의 유진월 작, 류근혜 연출의 <봄비 온다.>를 마치 외국의 명작연극을 보는 것 같은 독특하고 탁월한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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