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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73]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11-27 14:23:47
  • 수정 2024-03-14 06: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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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김병로[金炳魯]는 1948년 초대 대법원장(大法院長)을 지낸 한국의 법조인.정치가로 변호사가 돼 6.10만세운동 등 관련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았다. 


8.15광복 후 한민당(韓民黨) 창설에 참여, 중앙감찰위원장이 됐다. 이후 자유법조단(自由法曹團)의 대표, 민정당(民政黨)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본관 울산(蔚山), 호 가인(街人)으로, 전라북도 순창(淳昌)에서 출생했다. 18세 때 담양(潭陽) 일신학교(日新學校)에서 서양인 선교사에게 산술과 서양사를 배웠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용추사(龍湫寺)에서 최익현(崔益鉉)의 열변을 듣고 동지들을 모아 순창읍 일인보좌청(日人補佐廳)을 습격했다.



같은 해 창흥학교(昌興學校)를 설립, 신학문을 가르쳤고 1910년에 도일(渡日), 1913년에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했고 일본 유학 중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장을 지냈다. 경성법전(京城法專) 조교수와 보성전문(普成專門) 강사를 역임, 19년에 변호사를 개업했고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 6.10만세운동, 원산파업사건(元山罷業事件), 단천노조사건(端川勞組事件) 등 관련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았고, 1927년 신간회(新幹會)의 중앙집행위원장이 됐다./사진-박광준 기자 



8.15광복 후 한민당(韓民黨) 창설에 참여, 중앙감찰위원장이 되고 1948년에 초대 대법원장(大法院長)에 취임했다. 1957년 대법원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자유법조단(自由法曹團)의 대표, 민정당(民政黨) 대표최고위원,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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