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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 보물 지정 예고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9-20 21:16:17
  • 수정 2023-12-21 13: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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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등 총 4건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사진-문화재청 

[이승준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조선 17세기 조각승(彫刻僧)으로 이름을 떨친 색난(色難)이 만든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색난은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여러 선배 조각승들을 이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대부분의 동시대 조각승들처럼 정확한 생몰연대와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관련 기록 등을 통해 1640년을 전후로 출생해 1660년대 수련기를 거친 후 1680년 우두머리인 수조각승이 돼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약 40년 넘게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색난은 동시기 조각승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보통 유명 조각승이 평생 10건 내외로 작품을 남긴 것에 비해 색난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건에 이른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난이 만든 불상을 선호했고 그의 조각 기술을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는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는 뜻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 불렸다.  


문화재청은 이렇듯 조선 시대 대표적인 조각승들의 작품을 좀 더 체계적으로 재평가하고 중요 작품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해 선제적으로 보존 관리키 위해, 2018년부터 지정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결과, 동일작가 불교조각에 대한 ‘국보.보물 지정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이 기준에 맞는 색난의 작품 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하게 됐다.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光州 德林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는 지금까지 알려진 색난의 작품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빨라 그의 일대기에 있어 상징성이 큰 작품이다. 발원문을 통해 수조각승으로 활동한 40대인 1680년(숙종 6년)에 제작했음을 알 수 있고, 총 26구로 구성된 대규모 불상이다.


실재감 있는 얼굴 표현과 넓고 낮은 무릎, 귀엽고 큰 얼굴에 크게 강조된 코의 표현 등 안정되고 아담한 조형미를 추구한 초기 제작경향을 보여준다. 세부표현에서는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으면서 전반적으로 17세기 후반 조각승들이 추구한 미의식도 투영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색난은 17세기 후반 불교조각의 새로운 양식을 주도한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수조각승으로서 색난의 현존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위상까지 고려하면 상징성과 중요성이 인정된다. 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요 존상(尊像)의 손실이 없고, 작품성도 뛰어나 17세기 후반 명부전 불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高興 楞伽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十六羅漢像 一括)」은 능가사 응진당(應眞堂)에 봉안돼 있는 불상 일괄로,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85년 6월 전라도 홍양현(洪陽縣) 팔영산(八影山) 능가사(楞伽寺) 승려 상기(尙機)가 발원했고, 색난이 수조각승으로서 그의 동료.제자들과 함께 주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고흥 능가사는 색난의 본사(本寺)이자 활동의 본거지로서, 이곳의 응진당 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은 그가 오래도록 머문 사찰에서 대단위 불사를 진행하고 남긴 작품이라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는 응진당 불상 조성 외, 1698년 능가사 범종 시주, 1707년 능가사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간행 시주, 1730년 능가사 기와 시주 등 이곳의 다양한 불사(佛事)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고흥 능가사 석가여래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은 응진전 조상(造像)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도상학적으로 석가여래-미륵보살-제화갈라 보살로 구성된 삼존상을 비롯해 문수.보현보살과 아난·가섭존자가 육대보살로 이루어진 이채로운 구성이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높다. 


이는 이러한 응진전 도상이 1624년의 순천 송광사 응진전 불상에서 시작해 이후 색난에 의해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한 사실을 통해서도 조각사적으로 주목되는 현상이다.

  

주요 존상이 결실되지 않아 구성이 거의 완전하고, 나한상의 표정과 몸짓이 지물(持物, 불보살 등이 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과 잘 어우러져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어 예술성도 탁월하다. 


특히, 나한(羅漢, 부처의 제자)의 얼굴과 세부표현은 색난의 스승으로 알려진 응원(應元)과 인균(印均)의 조각 전통을 계승한반면, 바위 형태의 대좌에 각종 동물 소재를 적극 활용한 점은 그의 또 다른 스승인 무염(無染)의 영향도 함께 보여,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은 색난 조각의 형성과 발전, 그의 사승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金海 銀河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1687년(숙종 18년) 제작되어 김해 신어산(神魚山) ‘서림사(西林寺) 시왕전(十王殿)’에 봉안된 불상이다. 서림사 시왕전은 현재의 은하사 명부전을 가리킨다. 은하사 명부전 존상은 모두 21구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귀왕, 판관, 사자, 금강역사 등 거의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경상도 최동부 지역인 김해 지역에 조성된 색난의 작품으로서, 주로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활동 영역을 파악하는데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색난이 수조각승으로 조성한 명부전 불상 일괄은 대략 4건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광주 덕림사 불상과 함께 색난의 명부전 불상 중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롸 함께 그의 전성기 조각 양식이 잘 드러나 있고, 형태의 비례나 양식에 있어 아담한 체형을 추구한 17세기 후반의 조각양식과도 상통한다. 특히, 시왕상의 관모(冠帽, 모자)와 발거치대에는 용, 봉황, 코끼리, 사자 등 다양한 동물들을 수용한 창의적이고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고, 조각기법 역시 정교하고 섬세해 조각사적으로 높게 평가된다.


‘김해 은하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1687년 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제작한 상으로 존상의 완전성과 창의적인 도상(圖像), 그리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학술.예술적 중요성이 크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의 한 획을 그은 색난의 전성기 때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은 경북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불상으로서(평균 높이 약 3.3m), 색난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황전의 창건과 불상 조성은 화엄사의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불사(佛事)로서, 전각명도 왕실로부터 하사받아 이때부터 장육전에서 ‘각황전’으로 변경됐다. 또한 불상 조성에 있어 숙종을 비롯해 측근 왕실인사들인 인현왕후(仁顯王后, 숙종의 계비), 경종(景宗, 당시는 세자), 숙빈최씨(淑嬪崔氏, 숙종의 후궁), 영조(英祖, 당시는 연잉군延仍君)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권세 있던 가문의 인물들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 최대의 왕실불사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에 의해 7존(尊)의 불보살상은 1703년 10월 4일에 수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협업해 만든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여래좌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雄遠),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秋朋), 지적보살상(智積菩薩像)은 추평(秋平)이 각각 주도해 조성한 사실을 통해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과 그 제자들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입증해 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거대한 이층전각의 목조건물로서, 여기에 봉안된 불상 또한 규모에 맞는 웅장함과 형태미로 조성됐다. 주존불인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당당하고 묵직한 형태에 신체에 비해 큰 네모난 얼굴로 압도적이면서도 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삼불좌상의 좌우에 서 있는 사보살상은 유사한 얼굴과 비례를 보이면서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해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여래와 보살의 조형성은 전각 내부를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이끄는 효과를 보인다. 이는 색난의 우수한 감각과 조각기술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편, 이 화엄사 각황전 불상은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석가.다보.아미타여래 삼불상과 석가여래의 좌우협시로 석가의 협시보살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다보여래의 협시보살로 지적보살이,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 관음보살이 짝을 이룬 도상이다. 이는 1665년 간행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의거한 ‘법화거불(法華擧佛)’, 즉 법화신앙에 바탕을 둔 불교의식집에 등장하는 도상의 최초 조각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처럼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40여 년 동안 수화승으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이자,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는 점,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춘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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