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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대중 정신의 올바른 계승·발전이 필요한 이유
  •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 등록 2021-09-14 10: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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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였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영화제작사 명필름과 계약을 체결하고, 김성재 前문화관광부장관(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을 대표 제작위원으로 하는 ‘김대중 대통령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를 구성해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시대의 창’ 출판사는 김대중 연구의 1인자로 손꼽히는 장신기 작가가 쓴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를 발간하기도 했다. 


# 왜 지금, 김대중에 대한 평가인가?


돌아가신 지 12주기나 지난 지금, 다시 김대중에 대한 평가가 활성화되는 것은 시기적 요인이 클 것이다. 즉, 지금이 대선 경선 기간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이 요구되는 점도 있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분들 가운데 이낙연, 정세균, 추미애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발탁해 정치에 입문한 분들이라는 개인적 인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끼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립적인 정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박정희와 더불어 영향력이 가장 큰 분으로 평가한다. 7대 대선 후보로 선출된 1970년부터 2009년까지 40여 년 동안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을 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은 기존의 보수적 국가발전 노선에 대한 총체적·전면적 대안 노선과 구체적 정책 및 실천 프로그램을 정립했다. 게다가 정권교체 후 이것을 국정에 직접 반영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민주진보 진영의 뿌리가 되는 정치인이다.


김대중 서거 일을 맞아 이재명 후보는 “불의와 역경에 굴복하지 않았던 김대중 정신이야말로 그분께서 역사에 남긴 거대한 위업이므로 거인의 삶을 따라 멈춤 없이 전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낙연 후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의와 인권, 문화의 패러다임을 처음 만드신 분으로 지혜와 힘을 모아 대통령님께서 못다 하신 꿈을 이뤄가겠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정세균 후보는 “당신이 꿈꾸시던 서민과 중산층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 것이며, 당신의 뜻을 이어 꼭 민주정부 4기를 수립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에는 홍준표 국민의힘 후보가 “김대중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등 보수 진영에서도 김대중의 정치와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돌아가신 지 12년이 지나도록 김대중 정신이 무엇인지, 또 민주당은 그 정신을 제대로 정립(定立)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돌아봐야 할 것 같다.


#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과 업적들


일반적으로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하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것과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 그리고 IMF 구제금융 체제를 극복한 것 등을 떠올린다. 평생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연구한 장신기 작가는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김대중은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란 IMF위기를 전 세계가 놀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극복한 능력 있는 정치 리더십을 보여준다. 


2) 민주화 운동 지도자이면서도 대중경제론 등 실물경제에 대한 지식과 감각이 뛰어난 경제리더십을 보여준다. 


3) 한국 입장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대상인 북한과 일본을 상대로 모두 관계 개선을 이루어냈고, 미국·중국·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해서 외교의 황금기를 개척한 국제적인 외교리더십을 보여준다. 


4) 지식정보화(IT) 강국 건설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통한 한류 형성에서 보듯이 관념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의 실질적 삶의 개선에 중심을 둔 실용주의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5) 과거사 문제 등에서 관용과 화해의 대통합 정치로 생산적 정치를 이뤄낸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6) 구호와 선동을 앞세우지 않으면서 치밀한 전략을 통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 노련한 전략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남북관계나 국제관계가 어려울 때 많은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 능력을 떠올리고, 문화계에 계신 분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을 때 스크린 쿼터 제도의 사수 등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기에 이룩한 문화·예술 르네상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제도가 1945년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작한 이래 50년 만에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다. 


또한,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근거 중의 하나가 의료보험 통합(국민건강보험제도 창설)을 이룩한 당대의 업적과 전국에 광통신망을 깔고 IT산업 육성책을 실시한 것 덕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인 미국이 코로나19 진단에만 초기에 170만 원이 넘는 본인부담금이 있었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어도 확진 후 격리와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 4,300만 원이 부담스러워 진단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치료비가 너무 비싸 코로나19로 의심되어도 집에서 사망하는 일이 속출하면서 뉴욕 한가운데 컨테이너를 두고 시체를 모아서 화장하는 장면이 CNN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의료보험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 2000년 7월부터 기존의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를 통합 일원화함으로써 국가의 단일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에 1,865억 원, 치료비에 4,372억 원을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했다. 이것이 ‘본인부담금 0원’으로 한 푼도 내지 않는 무상진료 혜택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었다. 


2000년 당시 12.9조 원이던 국민건강보험의 연간 진료비가 20년이 지난 지금은 본인부담금을 포함해서 연간 105조 원이 되었고(2020년), 건강보험 급여비는 연간 87조 원이 지급되었으며, 코로나19 진단과 치료비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으로 인한 치료비와 입원비 등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부담할 수 있도록 한 근본적인 기초를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것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시신을 모아둔 뉴욕 냉동 트럭의 내부 사진미 CNN방송이 디트로이트 시나이 그레이스 병원의 응급실 직원들로부터 입수한 사진, 시신보관용 가방(Body bag)에 담긴 시신들이 빈 방의 바닥과 선반 위에 쌓여 있고, 시신의 소지품을 보관한 푸른 비닐이 그 위에 놓여 있다 국민들이 집안의 금반지를 모아 IMF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그런 어려운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R&D의 50%에 달하는 금액을 투입해서 전국에 광통신망을 깔았다. 온 국민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그런 결단력 덕분에 지금 우리 국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각자의 핸드폰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을 하고, 확진자의 동선에 따른 검사 대상자를 알려주고,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도록 하는 등 세계가 부러워하는 방역 시스템의 구축과 실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시기는 IMF로 인해 30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기는 등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당장 생계가 막막했던 15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2000년 10월 실시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일정 소득 이하의 모든 국민(취약계층)에 대한 기초생활 보장(시혜가 아닌 국민의 권리, 즉 수급권)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부조 제도라고 하겠다. 우선 외환위기로 급증한 실업자와 노숙자 및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비 보장과 의료보장을 위해 시작되었고, 교육급여와 주거급여 등을 포함해서 우리 국민 약 150만 명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 김대중 정신, 어떻게 계승해야 하나?


아마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걸출한 인재는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성과가 한 명의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인물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면, 이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기 어렵다. 한 명의 영웅이 남긴 흔적과 영향은 오래 남지만, 개인의 능력을 넘어 그 과정에서 있었을 수많은 고민과 헌신들, 그리고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김대중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객관화하고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라야 우리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정치와 역사 과목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을 배우게 하고,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김대중 개인을 영웅화 또는 신격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국민의 노력과 고난의 역사,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동시대인들의 패기가 담겨 있고, 그것이 김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응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실시되는 초등학생 백일장을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 제작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국민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국제 정세 등을 포괄해 공(功)과 과(過)를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분야별로 각 정책의 구체적인 기획 의도와 업적을 평가하고 현재화하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지금의 시점에서 김대중 정신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서 다루기 전에 정책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살아있을 때, 당시의 상황과 판단을 들어보고 내용을 정리함으로써 후세가 교훈과 귀감(龜鑑)으로 삼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정리된 내용과 교훈을 가감 없이 국민에게 알리고 공론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등 노동의 문제와 기업금융의 몰락과 경제(재벌)의 집중 등 신자유주의 제도들이 도입된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그런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도 역사의 교훈으로 정리해야 한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 IT 산업을 포함한 벤처 육성 등의 노력과 성과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교훈이 될 것이다.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나 ‘아데나워 재단’과 같이 정당 연구소들이 당의 이념과 정책을 만든 정치 지도자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고, 그가 추구한 이념과 정책들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매년 수조 원의 국고 지원을 받아 당원과 국민들을 교육하고 있다. 우리도 정당 교부금이나 정치 자금을 활용해서 김대중의 고민과 정책을 현재의 상황에서 분석·평가하며, 또 당원과 국민에게 홍보·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가칭)김대중 스쿨’을 만들어 차세대 정치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도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5번의 죽을 고비와 55번의 가택연금, 6년간의 수형생활, 777일의 해외망명 등 모진 탄압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지켜냈다. 그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만들고자 했던 나라를 우리가 잘 구현하며 이어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민주당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계승하겠다고 출마한 후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국민들의 요구와 시대정신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배워야 한다. 과감한 결단과 흔들림 없는 추진력, 그리고 꾸준한 실천력과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보내면서 그의 업적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우선 진정한 김대중 정신이 무엇인지를 정립(定立)하고 그것을 후손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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