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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의 한국기행 15]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그 곳, - 경북 안동
  • 박성환 기자
  • 등록 2021-08-28 19:25:28
  • 수정 2024-03-23 00: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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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옛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게 사는 사람들 ‘경북 안동’

 

끓임 없이 이어지는 물줄기,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다 이내 이즈음에서 시간이 멈춰선 듯하다.

길게 이어지던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으로 굽이돌며 흐르는 듯 아닌 듯, 

그 속에는 오래된 옛이야기가 어제 일처럼 가까이 있다.


600년의 시간을 터 잡고 살아온 사람들,

안동 사람들은 지금도 예스러운 풍경을 간직하며 산다.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지는 땅, 전통과 불교, 유교문화로 이어지는 다양성에, 시대별로 이어지는 역사와 전통이 머문다. 

예를 지켜야만 될 것 같은 묵직함이 있는 땅, 그렇기에 함부로 나서 잘 안다 자부하기에는 너무 넓고, 잘난 척 하기에는 너무 깊은 땅, 안동이다. 


서울의 2.5배에 이르는 넓은 땅이지만, 인구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7만 여명이 살아가고 있다. 그에 반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와 다양한 볼거리들이 가득한 땅이다.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하여 기분 좋게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한가득 계절의 풍경이 창을 넘어 부드러운 빛을 맞이하는 것이 익숙할 즈음이면, 안동이다. 


여름들판은 벌써 가을채비로 분주하고, 산들의 나무들도 옷을 갈아입고 있다. 

시원스레 부는 바람이 머물러 공기조차 고요하다. 

모두가 빠른 속도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이곳 안동에서는 오래된 옛 이야기들이 어제의 일 같다.

 

부용대


태백산 삼수령에서 남쪽으로 흐르던 낙동강 물줄기가 어느 순간 태극을 그리며 서쪽으로 너른 평야지대를 만들어냈다. 

낙동강물이 흐르며 감싸 안고 있는 평평한 들판, 이곳에 기와집 160여동, 초가집 200여동 넘으며, 78개의 종가가 있다. ‘안동 하회(河回)마을’이다. 


풍산류씨가 600년간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선조 때 영의정이었던 ‘서애 류성룡’과 그의 형, ‘겸암 류윤룡’ 선생이 자라난 곳이다. 

오래된 고택이 그대로 보존되고 옛 법도와 질서가 존중되는 마을은 위, 아랫집이 형제이고, 담 넘어서는 숙부와 조카가 모여서 산다. 

 

마치 조선시대의 어느 거리를 걷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서로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공경하는 곳, 하회마을 고택들의 기본은, 남정네들은 여인들의 생활공간을 존중하고, 여인들은 남정네들이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도록 지어진 한옥의 미덕이 그대로 살아있다. 

단순한 눈 요기꺼리가 아닌 대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터전이다. 

 


하회마을이 지금도 옛 모습을 품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숨은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600년이라는 시간동안 터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생활을 위해 청소를 하고, 부서진 곳을 고치지만 기본적인 형태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하니 그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은 수백 년 전 그대로다.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지만, 사람들은 집을 떠나지 않았다. 

집과 함께 키워왔던 가문과 역사의 이야기들은 결코 옛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공경하며 조화를 이루는 땅에서 자란 사람들은 옛 선인들의 가르침을 따라 법도를 지키고, 그 예절대로 집을 지었다. 

선현들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은 사람들의 집, 집은 주인을 닮아 지조를 지키며 지금도 서 있다. 


세월이 흐른다하여 새것을 찾아 나서지 않고, 

묵은 것을 다듬어 새것처럼 쓰는 사람들,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예(禮)이고 몫이다.

 

삼신당 느티나무


마을은 수령 600년의 삼신당 느티나무가 마을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삼신당을 중심으로 강을 향해 고택들이 세워졌으며, 그 밖으로 초가들이 들어서 마을의 집들은 어깨를 맞대어 들어섰다. 그래서 마을의 집들은 모두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흔하게 보는 정남향집의 선호가 없다. 

 

동으로 마을의 주산인 327m의 화산이 낮은 구릉으로 병산서원까지 닿으며, 마을의 서쪽으로는 마을을 한눈에 들여 보는 부용대가 있다. 부용대의 오른쪽에는 서애선생이 징비록을 썼던 옥연정사가, 왼쪽으로는 겸암선생이 학문을 닦던 겸암정사다. 

 


일상의 부귀영화가 잠시의 즐거움이라면, 정신의 부유함을 대를 잇는 즐거움이다.

하회마을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두 가지다. 선비들의 풍류놀이 ‘선유줄불놀이’와 서민들의 놀이였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그것이다. 


부용대와 만송정 숲을 잇는 줄불을 이용하여 시회(詩會)를 즐겼던 놀이로 지금은 매해 2회 열린다. 과거 하회마을의 선비들이 나룻배에 올라 술잔을 오가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놀이가 ‘선유줄불놀이’이고, 


반면 ‘별신굿탈놀이’는 민초들의 삶을 해학으로 풀어낸 놀이다. 억눌림과 속박 속에 살던 민초들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의 지배계급을 농락하며 풍자한다. 



인간만사, 희로애락이 하회탈에 스며있다. 

이러한 오묘함은 장인의 손에 탈이 만들어지고, 마당 앞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다. 눈가의 주름하나, 미소로 벌어진 입의 크기와 각도 하나가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각기 달라 보인다. 


서로 다른 사람들, 서로 다른 열한개의 모습들, 하회탈의 주인공은 내 옆의 이웃들이다. 

양반과 중, 백정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신세를 한탄하며 잘못된 사회를 꼬집는다. 그 많은 말들을 다 들어주고, 이해하다보니 하회탈의 표정은 그리도 절묘해진 것일까, 그래서 하회탈은 유쾌한 듯 보이면서 슬프고, 웃고 있으나 눈물을 흘리는듯하다. 


처음에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신을 위한 축제였지만, 점차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서러움을 대변해주는 놀이로 변했다. 하회탈이 가진 슬픈 미소, 안동사람들은 그 놀이의 즐거움을 잘 알고 있었다.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넘어서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교건축물, 

‘병산서원(屛山書院)’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로 정치, 경제, 군사 전략가로 활동했던 서애 류성용(西厓 柳成龍, 1542~1607)이 31살 되던 해 풍산 상당리에 있던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서원의 누각인 만대루에서 보는 풍광이 빼어난 서원으로, 낙동강의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이 흐르며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하여 ‘병산’이라 하였다. 

1607년 선생이 죽자 서애 선생과 그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을 배향한 서원으로, 1863년(철종14년)에 병산서원이 되었다. 이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도 훼손 되지 않고, 유지된 서원이다.



서원은, 

지역 유림이나 문중이 인재양성과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세운 사립 교육기관이다. 더하여 위대한 업적과 학문에 기여한 선조들을 위해 사당을 짓고 위판을 모시며 향사를 한다. 


옛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지금도 기억하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병산서원의 장엄함속에는 절제미가 가득하고, 천혜의 자연주의 속에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주변 경관과의 조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옛 선비들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입교당에 앉아 만세루의 일곱폭 풍경을 바라보며 옛 선비들은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해야 할 일,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일들을 고뇌했으리라, 

그래서 안동에서는 “부자 그늘 아래 굶어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라며 그들의 도덕성과 체면들을 추스렸을 것이다.


정갈하게 닦여진 마루, 그 곳에 앉아 바라보는 병산, 지금의 이 풍경이 낯설지 않음은, 그렇게보기 좋음은 우리네 역시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안동땅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러한 포근한 마음을 갖는다.

 


가슴 답답하면 하회마을의 신작로를 걷는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다면 만송정 소나무 숲에 목 놓아 울어도 좋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탈을 쓰고 마당으로 간다. 할 소리, 안할 소리, 마음대로 떠들며 웃고 운다. 

부용대에 올라 시원한 바람 맞으며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어지간한 답답함을 풀리게 마련이다. 

만세루의 굵직한 기둥에 기대 배롱나무를 바라봄도 풍류다. 


시간이 머문 자리에는 기억이 길다. 

옛 모습의 흔적은 눈에 담고, 골목에 스민 옛 선인들의 행동은 가슴에 담는 여행, 

안동에는 그러한 기억을 남게 하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지켜 오는 사람들이 있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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