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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76] 소극장 공유 2기 동인페스티벌 극단 물 맑고 깊은, 황정원 작/연출 ‘190326 뚝섬만세운동’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7-08 01:11:47
  • 수정 2023-02-15 0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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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공유 2기 동인페스티벌 극단 물 맑고 깊은의 황정원 작 연출, 유태현 각색의 <190326 뚝섬만세운동>을 소극장 공유에서 관람했다.

극작과 연출을 한 황정원(1972~)성동구립극단 예술감독은 <그 여자의 소설>, <갈매기, 퀸 에스더>, , <모정의 세월>, <죽기 살기>, <어떤 동산> 그 외의 다수 작품에 출연한 미모의 배우다.

성수동 뚝섬은 1919년 3월26일 저녁,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주민들이 몰려가 일제에 부역한 면서기를 응징하는 등 만세시위를 했던 곳이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살아남아 3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옛터를 굽어보고 있다. 마차꾼 김완수(31), 소달구지꾼 김일남(28), 노동자 최자근동(26), 짐차꾼 염명석(36)…. 100년 전 노동자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거리를 누볐다.

1919년 3월26일 뚝도리 만세시위는 고양군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당시 고양군은 사대문 바깥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현재 서대문, 마포, 은평, 도봉, 동대문, 중랑, 잠실 지역까지 모두 고양군에 속했고, 고양군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 현재 성동구 뚝섬 지역이었다.”

1919년 당시 고양군은 한지면과 뚝도면 외 몇 개 면으로 나뉘었다. 지금의 성수동 지역은 뚝도 면에서도 가장 번화한 중심가였다.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수운이 통하는 길목인 덕에 마을에는 술장수와 밥장수, 숙박업소 등이 즐비했다. 면사무소, 우편국, 금융조합, 헌병주재소, 순사주재소 등도 이곳에 있었다. 1919년 3월26일 저녁,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시작한 만세 행렬이 1500여 명 가까이 불어나고, 그 가운데 300여 명은 총칼을 들이대는 헌병주재소를 포위해 맞서 싸웠고, 끝내 100여 명이 연행됐으며, 주동자로 지목된 12명의 마을 주민이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했다.

현재까지 종로구 태화관과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종교인과 학생들이 주도한 3·1운동에 주목하지만, 뚝섬만세운동은 전 민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국적 시위였다. 뚝섬 쪽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은 대부분‘노동자’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뚝섬은 조선 시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대대로 서울의 땔감과 채소를 공급해온 곳이다. 강원도 삼림지대 등에서 땔감을 싣고 온 뗏목이 뚝섬 나루터에 도착하면, 노동자들은 하역하고 지게와 달구지로 한양, 또는 경성 시가지로 땔감을 옮겼다. 뚝섬 하역꾼들과 지게꾼들, 우마차가 바쁘게 지나다녀 ‘신작로’로 대우받던 길은 이제 오토바이와 화물차가 간간이 지나는 한적한 길로 변했다. 1919년 3월26일 뚝섬 만세 행진은 그 길의 끝, ‘이뭇개’에서 시작됐다.

“뚝도 청년동포형제들아. 근일 삼천리강산 13도 중 2천만 동포가 모두 소동을 하는데, 왜 그런지 뚝도 청년들은 한마디 하지 않는가?” “대한독립을 위해 여러분도 만세를 부르시오.” “우물 앞으로 모여서 만세를 부르되 시간은 오후 7시 30분쯤 되어 부르라.”

1919년 3월23일 뚝섬 여기저기에도 벽보가 붙는다. 3월26일의 만세운동을 도모하는 가지각색 문구가 마을 주민과 노동자들을 움직였다. 현 서울 숲 지구대 앞으로 뻗은 큰길을 따라가면, 길 끝에 무심하게 놓인 바윗돌 4개가 보인다. ‘이뭇개’라 기록된 뚝섬 만세운동의 거점이다.

이문동’과 ‘야소교회’, ‘서뚝도리 밥집’ 앞에서 시위꾼들이 만나 만세 행진을 했다. 성수동에 ‘이문동’이란 지명은 없는데, 당시엔 마을로 들어가는 문을 대체로 ‘이문’이라 했다. 바위 4개가 옛 문기둥을 받치던 돌이었다. 우리말로 ‘이뭇개’라 불렀다.”

옛 지도 속 ‘야소교회’는 현 성수동교회와 터가 들어맞다. 1906년 작은 한옥으로 지은 성수동교회는 여러 번 중축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 만세 행렬은 이뭇개와 야소교회를 지나 다시 ‘순사주재소’ 앞을 지나는데, 지금의 서울 숲 지구대 위치와 똑같다. 다시 길을 돌아 지구대 왼쪽 길을 따라 직진하면 당시 관가가 늘어섰던 길이다. 우체국 터와 관사, 금융기관 터, 면사무소(현 성수동 성당)터도 길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벽보로 퍼져나간 3·26 만세운동 약속 장소 ‘우물 앞’은 현재 일반상점가인 ‘우리 눈 안경’점이 있는 삼거리다.

.성동구청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확한 역사 고증과 실증을 거쳐 마을유적지를 살펴보고 알림판을 설치하는 등, 주민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동네 유적 보존 방법과 기림 사업 등을 논의하고, 3·1운동 유적을 기념하는 방안을 검토하려 한다.”며 지난 3월1일 왕십리광장에서 주민 주도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였다며 지난 100년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고 발표하고, 2021년 드디어 현지에 뚝섬만세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무대는 배경에 100년 전 뚝섬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듯싶은 여러 명의 인물상이 조각처럼 세워져 있어, 실제 조각인가 하고 착각을 하지만 자세히 보니 출연진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 상태로 서있는 모습이다. 성수 쪽 언덕에 우물을 만들고, 경찰서 구치소로도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뚝섬만세운동 기념비와 함께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광경을 보던 남학생 두 사람이 만세운동  퍼포먼스에 함께 참가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당시 뚝섬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가족, 남매, 부모, 이웃, 일경, 면서기가 등장하고,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직후이기에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독립의 헛된 꿈을 꾸지 말라며 경계와 감시를 확대한다. 그러나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이 태극기를 여러 개 준비해 오면서 만세운동의 열의를 드러낸다. 여학생의 부모는 딸을 생각해 만류를 하고 이웃 사람들도 모친의 의사처럼 만세운동에 주저함을 드러내고 반대의사까지 보인다. 이때 일경과 면서기가 등장해 여학생을 연행해 간다. 

그러자 여학생 모친의 마음과는 반대로 주민들의 만세운동의 열기가 솟아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일본여인이 등장하고, 조선인을 하대하는 모습이 펼쳐지니 뚝섬사람들의 분노는 폭발직전에 이른다. 그러나 일제에 부화뇌동하는 인물이 어찌 없을 수 있으랴? 여학생 중에는 일제에 부화뇌동하는 가족의 처사가 부끄러운지 우물 속에 빠져 자살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919년 3월 26일, 거사 시각이 되자 뚝섬사람들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물가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른다. 그러자 일경과 헌병대의 발포가 시작된다. 무차별 살상이 총성과 함께 무대를 채운다. 결국......

대단원은 뚝섬만세운동을 하던 출연자전원이 일어나 옛 애국가 합창을 하면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 속에 끝이 난다.

황정원과 김진남이 일경, 정경자가 계월, 허경기가 명순, 이진실이 기모노, 장민성이 석진, 전지연이 소영, 유태현이 주열, 박현우가 광철, 한영종이 수전, 강현빈이 수복, 이승우가 원용, 슈바타 아야카가 사키, 김도윤이 금동, 임지민과 김아린이 기모노 딸로 출연한다. 의상과 분장은 물론 성격창출과 연기력에서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드러나,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조연출 박재진, 움직임 윤승혜 정윤주, 영상 음악 이재원, 분장 윤일향, 특수분장 Andrea Soledad Rios, Florencia Fabiana Rios, 조명디자인 김정희, 제작 빈대욱, 기획 정재환 이정미, 드라마투르그 정혜전, 의상 소품 도영애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소극장 공유 2기 동인페스티벌 극단 물 맑고 깊은의 황정원 작 연출, 유태현 각색의 <190326 뚝섬만세운동>을 100여 년 전 모습을 재현해 낸 듯싶은 독특한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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