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박정기의 공연산책 171] 공연배달 탄탄, 박승원 연출 ‘거룩한 직업’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7-01 03:45:22
  • 수정 2023-02-15 08:01:07

기사수정

공연배달 탄탄의 이근삼 작, 박승원 연출의 <거룩한 직업>을 알과핵 소극장에서 관극했다.

이근삼(1929~2003) 선생은 평안남도 평양시 대찰리 145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혜화전문학교(현재 동국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육사교관과 서울대에서의 교편생활을 거쳐 1957년 미국 노오스 캐롤라이나 대학원에 유학하였고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3년 11월 28일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하였다.

이근삼 선생은 기존의 사실주의적인 극작술에 반기를 들고 비상식적 인물과 소극적(笑劇的) 요소의 도입을 통해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고 다양한 형식실험을 가미한 작품을 집필했다. 주요 작품으로 <원고지>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 <원고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거룩한 직업> <위대한 실종> <국물 있사옵니다.> <유랑극단> <데모스테스의 재판> <30일간의 야유회> <아벨만의 재판> <게사니> <향교의 손님> <막차 탄 동기동창> <이성계의 부동산> 등이 있다.

연출가 박승원은 75년에 극단 산울림에서 <홍당무> <고도를 기다리며> <하늘만큼 먼 나라> <위기의 여자> <불가불가> <목소리> 등의 작품을 통해 연출수업을 쌓은 후 호암아트홀 무대예술감독으로 일했다. 그 후 신춘문예 단막극 연출, 아라발 페스티벌 연출, <뱀> <한밤의 북소리> <동물원 이야기> <두 사람의 사형집행인>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한 중견연출가다.

무대는 서재 겸 침실이다. 객석에서 바라본 오른쪽에 침대가 세로로 놓이고, 발 치에는 기둥으로 된 옷걸이가 있고, 머리 쪽에는 밀레의 명화 만종 그림이 걸려있다. 배경에 방문이 있고 문 왼쪽에 삼단 서랍이 있는 책장이 있고 책이 듬성듬성하게 꽂혀있다. 왼쪽 벽에는 창문이 있고, 창문 아래 삼단 서랍장이 놓였다. 무대 중앙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였다.

연극은 벽시계의 새벽 두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6, 70년대에 야방을 돌던 방범대원의 딱따기 소리와 함께 방범대원이 객석 왼쪽 계단 꼭대기에서 등장해 무대 앞으로 내려와 객석 오른쪽 계단 꼭대기 까지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내려와 등장했던 객석 왼쪽 계단 꼭대기까지 딱따기를 치며 퇴장한다. 방문이 조용히 열리고 손전등을 비추면 도적이 등장해 방 안을 뒤진다. 서랍장, 책꽂이, 기둥의 걸린 옷의 주머니를 뒤져 보지만 가져갈만한 물건이 없자, 실내등을 켜고, 배낭을 탁자 뒤에 내리고 식칼을 꺼내 침대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은 초인종을 누르려하나 도적은 이미 초인종선을 끊어놓은 상태다. 값나가는 물품이 없어 도적은 시간 낭비를 했다고 깨운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도적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는 사람을 일으켜 양담배를 권한다. 6, 70년대에는 백구나 공작이 고급담배였고, 서민들은 양담배가 비싸 사서 피울 생각을 못하던 시절이라, 잠이 깬 사람은 좋아라 하고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내일 도적이 왔더라면 교수의 봉급날이라 돈을 드릴 수 있었는데 하필 오늘 오셨나는 이야기에 도적은 그가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고, 교수의 강의비가 일반회사의 사원보다 저렴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대신 돈 대신 드릴 것이 있다며 교수는 베게 밑에 감쳐둔 강의 노트를 도적에게 가져다준다. 도적이 그걸 받을 리가 없다. 도적은 보따리에서 고급스러워 뵈는 술병을 꺼내, 잔 대신 장에 놓인 빈병을 가져다 술을 따라 함께 마시기 시작하며 대화를 나눈다. 세상사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도적은 교수에게 오히려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교수를 훈계하는 선배가 되기도 한다. 도적과의 대화 속에서 교수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도적은 위선의 세계에 굳게 갇혀있던 교수로 하여금 위선의 벽을 허물게 한다. 그런 후 도적은 떠나간다, 안방에 묶어 놓은 교수의 부인을 풀어주라는 말과 함께....

교수는 자신의 부인을 풀어주고 다시 서재로 온다. 이미 도적은 떠난 후라 교수는 부인에게 언젠가 부인의 친척이 교수에게 봉급이 훨씬 많은 경마장에 취직하라는 권고를 한 적이 있는데, 경마장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니, 부인은 도적과 마신 술이 과하셨나보다 하며 안주를 장만하러 부엌으로 간다. 교수는 15년간 애지중지하던 강의노트를 냅다 집어 던지는 장면에서 공연은 끝이 난다.

<거룩한 직업>에서는 경직된 상태의 교수와 여러 직업을 거치고 자신의 도적질을 정당화시킬 정도의 유연성 있는 도적을 대조시킴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이 웃음은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풍자적으로 논평하기 위한 극적 도구 노릇을 한다.

<거룩한 직업>에 나타난 현실은 비정상적이며 전도된 현상으로 인해 비극적이다. 이근삼 작가는 희극적 상상력에 근거한 비극적 세계관으로 비극적 세계를 희극적 수법으로 담아내는 특성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거룩한 직업>을 필자가 관람한 초연은 1961년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공연작품의 하나로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허 규 연출로 김성옥과 김동훈 두 배우가 출연해 대 성공을 거둔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50년간 무대우정을 쌓은 정상철과 김재건이 도적과 교수로 출연하고, 김화영이 학자의 부인으로 출연한다. 조용태와 배상돈이 방범대원으로 특별출연한다. 경륜과 기량이 풍부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관객은 공연에 몰두하게 되고 탄성과 갈채를 보낸다.

예술감독 고금석, 무대감독 전성열, 조연출 김남언, 무대 김민석 박소윤, 조명 홍문화 신예정, 음향 김태균, 시진 유희정, 기획 아트리버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공연배달 탄탄의 이근삼 작, 박승원 연출의 <거룩한 직업>을 연출력과 연기력이 하나가 된 한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